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펙렌코

Николай Владимирович Фекл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01–1951 ○ 자연사

변동하는 전선에서 책임을 떠안은 기갑 지휘관

1939년 6월, 그는 모스크바에 전보를 보내 군단 지휘를 주코프에게 넘겼다고 알렸다.

니콜라이 펙렌코는 러시아 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복무한 소련의 기갑 지휘관이었다. 그는 1939년 할힌골 전투 초기에 제57특별소총군단을 지휘했으나, 5월 전투의 실패 뒤 6월 모스크바로 소환되었고 게오르기 주코프가 그를 교체했다. 이후에도 기계화군단과 전차군단, 전차병과 기계화부대의 편성·훈련을 맡으며 전쟁 수행 체계의 한 축으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1~1942년 지휘의 시련: 두브노 반격과 보로네지 전선

독소전쟁 발발 무렵 펙렌코는 1941년 3월부터 맡아 온 제19기계화군단을 남서부전선에서 지휘했다. 이 군단은 두브노 일대의 전차 반격에 투입되었는데, 6월 26일 제40·제43전차사단이 독일 제11전차사단을 두브노 외곽에서 공격해 시내 중심으로 밀어냈으나, 독일 제13전차사단의 타격을 받아 원래 진지로 후퇴해야 했다. 다음 날 로코솔롭스키의 제9기계화군단이 뮬리노프 방향에서 독일 제13전차사단을 묶어 두면서 사정이 다소 나아졌고, 군단 잔여 병력은 스티리 강 동쪽으로 물러난 뒤 기동 방어로 동쪽으로 후퇴를 계속했다. 이 반격에 투입된 군단의 전차 전력은 취약했다. 기갑 차량의 기본 구성이 수상(수륙양용) 기관총 장갑차였고, 전차사단은 전쟁 전 편제상 대전차용 포신 화기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1941년 8월 15일부터 9월 20일까지 펙렌코는 같은 전선의 제38군 사령관을 맡았으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그해 11월에는 하리코프 군관구 사령관 직무를 임시로 수행했고, 11월에서 12월 사이에는 스탈린그라드 군관구 부대를 지휘했으며, 1942년 1월부터는 남부전선 부사령관(편성 담당)으로 일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홍군 자동장갑차량총국 부국장이 되었고, 6월에는 브랸스크 전선 작전집단 예하의 제17전차군단 사령관으로 보로네지 방향 방어작전에 참가했다.

보로네지 방면의 패배 과정에서 그는 스탈린의 불만을 샀다. 스탈린은 펙렌코가 '비열하게 행동하며 계속 속임수를 쓴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즉시 베코보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참모본부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그가 적합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되 그를 즉시 출동시켜 스스로 뒤집어쓴 치욕을 씻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지시했다. 펙렌코는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고, 참모본부의 명령에 따라 새 군단장 이. 피. 코르차긴에 의해 군단 지휘소에서 단기간 구금되기까지 했으나 형사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1942년 7월 스탈린그라드 훈련 자동장갑차량중심장이 되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이 시내로 밀려들던 8월에는 스탈린그라드 트락토르 지구 부대집단 사령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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