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류스킨호 구조에서 가가린 선발까지, 우주비행사를 만든 공군장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가장 안전했던 것은 가가린의 비행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위험했던 것은 보스호트 2호였다.” — 1966년 일기
소련 최초의 우주비행사 훈련 책임자(1960–1971). 1934년 첼류스킨호 빙상 캠프에서 34명을 구조해 최초의 7인 소련영웅 중 하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Il-2 공격기 군단을 이끌며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 리비우, 부다페스트, 프라하 전역을 누볐다. 1960년 공군 원수 베르시닌으로부터 유인궤도비행 군사책임자로 지명되어 가가린, 티토프, 테레슈코바, 레오노프 등 1세대 우주비행사들을 모집·훈련시키고 보스토크 1호 탑승자로 가가린을 추천한 심사위원장이었다. 코롤료프 사후 후임 미신과 수동조종권을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했으며 소유즈 1호와 가가린 사망을 모두 현장에서 겪었다. 사후 출판된 비밀 일기 『숨겨진 우주』는 소련 우주개발사의 결정적 1차 사료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6–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29보리소글렙스크 군사 조종사 학교 졸업, 극동 레닌 항공연대 배속
- 1934첼류스킨호 구조: 혼성 항공분견대 지휘, 34명 구조, 소련영웅 №2
- 1939주콥스키 공군사관학교 졸업, 제19경폭격여단장
- 1942–1943제292돌격항공사단장 (칼리닌 전선: 벨리키예루키·데먄스크)
- 1943–1945제8혼성·제5돌격항공군단장, 쿠르스크·키예프·리비우·부다페스트·비엔나
- 1956참모본부 아카데미 졸업, 제73항공군 사령관 (중앙아시아)
- 1960–1971공군 우주비행훈련 책임자, 유인궤도비행 군사총괄, 공군총사령관 우주보좌관
관련 역사 사건
우주비행사단의 인사와 규율
카마닌은 우주비행사단의 인사와 규율을 직접 쥔 관리자였다. 1961년 가가린과 티토프의 비행 뒤 그는 여성 우주비행사 모집을 제안했으나 코롤료프는 처음에 냉담했다. 그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베르시닌, 코롤료프, 켈디시를 설득해 소규모 여성 집단 모집에 동의를 받아냈지만 일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1961년 12월 당 중앙위 결정으로 여성 다섯 자리를 포함한 모집이 승인되었고, 도사아프가 주관한 선발에는 약 800명이 지원해 다섯 명이 남았다. 1962년 3월과 4월 테레슈코바, 솔로비요바, 쿠즈네초바, 요르키나, 포노마료바가 입단했다. 카마닌은 일기에서 다섯 사람의 이론 준비, 체력, 대중 활동을 비교한 뒤 테레슈코바를 첫 비행에, 솔로비요바를 후보로 추천했으며, 여성 비행이 대중 선전의 몫도 크다고 보았다. 1963년 6월 여성 가운데 테레슈코바만이 보스토크 6호로 비행했다. 나머지 넷은 1965~1966년 보스호드 다인승 선박에 의한 여성 첫 선외활동 계획에 배정되었다가 1966년 5월 프로그램 폐기와 함께 좌초되었다.
규율 집행에서 그는 가혹했다. 1963년 3월 27일 철도역에서 군 순찰대와 충돌한 사건으로 넬류보프와 두 동료의 제적이 결정되었다. 기록은 엇갈린다. 화가 난 카마닌이 셋 모두의 제적을 지시했다는 증언이 있는가 하면, 그 자신은 넬류보프의 뛰어난 훈련 성적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책임을 들어 복귀 기회를 주려 했다고 회고했다. 1960년 선발 1진의 한 사람이자 가가린의 후보였던 넬류보프는 우주비행사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1966년 2월 18일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1969년 10월 1일 여성 우주비행사단이 해체되자 카마닌은 일기에 이를 "또 하나의 실수"로 적었다. 여성 모집은 1980년에야 재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