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야코블레비치 마르

Николай Яковлевич Марр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그루지야 1865–1934 ○ 뇌졸중

제국 학술원 출신으로 유일하게 공산당에 입당해 소비에트 언어학을 지배한 야페트 이론의 창시자

'언어학의 세계 규모적 정립' — 마르가 자신의 이론을 일컫던 표현이다. 그에게 모든 언어는 네 원시음에서 비롯되었으며, 언어는 계급적 상부구조였다.

그루지야 쿠타이시에서 태어난 마르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카프카스 언어·고고학으로 명성을 쌓아 1912년 제국 학술원 정회원이 되었다. 혁명 후 언어를 계급적 상부구조로 보며 모든 언어가 네 원시음(sal, ber, yon, rosh)에서 비롯되었다는 '야페트 이론'을 주창, 1930년 공산당 입당과 함께 학술원 부원장이 되어 사망 시까지 소비에트 언어학을 지배했다. 그의 유사과학적 이론은 1950년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로 공식 폐기되었으며, 그 행로는 혁명기 과학과 권력의 길항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아니 유적 발굴과 카프카스학

마르는 1884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어학부에 들어가 카프카스와 근동의 언어를 공부했고, 1891년 석사시험을 통과한 뒤 모교에서 아르메니아어 강의를 맡았다. 초기 연구는 아르메니아어와 카르트벨리어(그루지야어) 문헌에 집중되었다. 아폰(아토스산), 시나이, 예루살렘 원정에서 그루지야어·아르메니아어·아랍어 필사본을 수집·편집했고, 아르메니아의 중세 수도 아니에서는 1892~1893년과 1904~1917년 발굴을 이끌었다. 1909~1910년 가르니의 헬레니즘 신전과 1916년 토프라칼레의 우라르투 요새도 조사했다.

이 현장 연구와 언어 연구는 학계에서 그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1900년 부교수, 1902년 아르메니아·그루지야 문학 정교수가 되었고, 1909년 러시아 학술원 역사·문헌학부의 준회원, 1912년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11~1917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어학부 학장을 지냈으며, 1915년 러시아 고고학회의 우바로프상을 받았다. 그의 언어학 저술에는 고대 아르메니아어(1903), 라즈어(1910), 고대 그루지야어(1925) 문법과 압하지야어-러시아어 사전이 포함된다. 1920년대 이후의 야페트 이론과 구별되는 이 초기 업적은 카프카스 문헌과 고고학 연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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