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감옥에서 과학자가 된 나로드나야 볼랴의 테러 이론가
1930년대 중반, 요양소에서 "당원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노인이 답했다. "나는 당원이오. '나로드나야 볼랴' 당원이오."
나로드나야 볼랴 집행위원이자 혁명적 테러 이론가로, 1880년 『테러 투쟁』을 집필하여 소규모 독립 테러 조직에 의한 전제정 타도를 주장했다. 이 구상은 동시대 동료들에게도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훗날 사회혁명당 테러 전략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25년간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와 슐리셀부르크 요새에 수감되었고, 출소 후 항공학 개척자·과학 대중화자로 변모하여 1932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이 되었다.
경력 연표
- 1874차이콥스키 서클 가입, '민중 속으로' 운동 참여
- 1878『지상과 자유』 공동 편집자
- 1879나로드나야 볼랴 집행위원회 위원
- 1880제네바에서 『테러 투쟁』 출간, 마르크스와 면담
- 1882–1905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슐리셀부르크 요새 수감, 수감 중 자연과학 연구
- 1907–1917레스가프트 연구소 교수, 러시아 물리화학회·천문학회 정회원
- 1918–1946레스가프트 자연과학 연구소 소장
- 1932소련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
관련 역사 사건
역사 연대기 수정론과 '새로운 연대기'의 선구자
모로조프는 감옥에서 성서와 신학 서적을 접한 후 역사 연대기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품게 되었다. 1907년 출간한 『천둥과 폭풍 속의 계시』에서 그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이 서기 395년 9월 30일의 실제 천문 현상을 묘사한 것이며, 그 저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라고 주장했다. 이어 『예언자들』(1914)과 7권의 대작 『그리스도』(1924–1932)를 통해 성서의 사건들을 천문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기존 고대사 연대기가 중세에 조작되었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고대 문명의 기록들이 실제로는 중세의 사건들을 중복 기술한 것이며, '고대'라고 불리는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출간 즉시 역사학자·철학자·천문학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니콜라이 니콜스키, 아브람 라노비치, 니콜라이 이델손 등은 모로조프의 방법론을 아마추어적 기상천외한 발상이라 일축했고, 미국 천문학자 니콜라이 보브로브니코프도 영문 요약판을 검토한 뒤 유사과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당국은 그의 반기독교적 결론을 무신론 선전에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그리스도』 전 7권의 출간을 허용했다.
모로조프의 연대기 수정론은 사후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70년대 모스크바 대학 수학자 미하일 포스트니코프가 이를 재발견했고, 그의 제자 아나톨리 포멘코가 이를 계승·확장하여 이른바 '새로운 연대기(New Chronology)'라는 거대한 유사역사학 체계로 발전시켰다. 모로조프가 고안한 천문학적 사건 재연대화 방법은 포멘코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전문 역사학계는 모로조프의 작업을 혁명적 과격주의가 학문의 영역으로 전이된 '허무주의적 역사관'의 전형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