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지붕 위에서 인간이 로봇을 대신한 장군
40~50초짜리 작업을 위해 25~30킬로그램 납 갑옷을 입혔다. '우리가 석기시대에서 온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나는 아직도 멈추지 못한다.
소련 민방위 장군이자 기술과학 박사. 체르노빌 원전 폭발 넉 달 뒤, 원격 로봇이 모두 고장 나자 정부위원회는 그에게 가장 위험한 구역의 수동 제염을 맡겼다. 그는 건물의 납 벽판을 뜯어내 급조한 방호복으로 병사들을 무장시켰고, 3,828명이 40~90초씩 교대하며 3호기 지붕에서 200톤의 고방사능 파편을 손으로 퍼냈다. 작전 후 루이셴병으로 투병하며 두 권의 책을 썼고, 소련영웅 칭호에 추천되었으나 키예프 군관구 참모장과의 갈등 끝에 명단에서 빠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3–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53하리코프 군사기술학교 졸업
- 1963하리코프 도로공과대학 기계공학 전공
- 1967–72모스크바 민방위 군사학교 교관, 쿠이비셰프 공병사관학교 부관과정
- 1972–86민방위군 군사기술위원회 선임전문가, 전소련 민방위연구소 제1부소장, RSFSR 민방위참모부 부참모장
- 1986체르노빌 특별위험구역 제염작전 지휘관
- 1988스피타크 지진 구조작전 지휘관
- 1990s–회고록 집필, 러시아 작가동맹 회원, 숄로호프 문학상 수상
관련 역사 사건
체르노빌 장애인 운동의 조직자
타라카노프는 체르노빌 작업으로 방사선병을 얻어 2급 장애인이 되었다. 그가 이끈 제염 작업에 동원된 병사들 가운데 상당수도 같은 병을 앓았고, 소련 붕괴 뒤 이들은 의료·주거·연금 문제를 개인 자격으로 떠안았다. 타라카노프는 이 문제를 개별 보상 청원이 아니라 조직된 집단의 권리 요구로 바꾸는 데 자신의 남은 역량을 쏟았다.
그는 국제 공공단체인 ‘체르노빌 장애인 사회보호센터’를 이끌었고, 모스크바의 같은 조직은 3천 명이 넘는 회원과 수백 명의 유족을 포괄했다. 기관지는 아니더라도 사고 관련 문헌과 모스크바 및 지방 체르노빌 장애인 명부를 관리했고, 4월 26일 기념행사와 국제 자동차 행진을 조직했다. 러시아 정부와 모스크바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무상 차량·주택 우선 배정·예산 치료·주택 유틸리티 요금 할인 같은 혜택을 하나씩 축소해 나가자, 그는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2016년에는 모스크바시가 20년 가까이 무상으로 쓰던 사무실을 회수하려 하자 항의했고, 같은 해 30주년을 앞두고는 “푸틴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활동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의 신임인사로 ‘붉은 벨트’ 지역을 돌며 유세한 경력과 겹쳐 있다. 그는 그때 체르노빌 희생자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이후 정부 정책과 갈등을 빚었다. 방사선병 후유증으로 평생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는 1990년대 이후 회고록과 자료집을 계속 펴냈고, 러시아 작가동맹 회원이자 숄로호프 문학상 수상자로 활동했다. 기록 보존과 권리 투쟁을 한 사람의 작품 활동으로 묶어 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