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표도로비치 바투틴

Николай Фёдорович Ватутин
소련 러시아 1901–1944 ✕ 전사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의 전략 설계자, 전선에서 쓰러진 육군대장

1942년 7월 보로네시가 위태롭던 작전회의에서 바투틴이 일어났다. "스탈린 동지! 저를 보로네시 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주십시오." 스탈린이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 훗날 바투틴은 그 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그 행동은 아마도 주변에 더 적임자가 보이지 않을 때 즉시 중대 지휘를 맡겠다고 결심한 병장의 결정을 떠올리게 했을 겁니다."

소련의 육군대장. 스탈린그라드 반격 '우라누스' 작전을 입안하고 쿠르스크 남측면 방어를 지휘했으며, 1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관으로 키예프를 해방했다. 1944년 2월 UPA 매복으로 중상, 4월 사망.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최후와 유산

1944년 2월 29일, 바투틴은 차기 작전을 준비 중이던 제60군 사령부로 향하던 중 로브노주 밀랴틴 마을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반소비에트 무장조직(UPA)의 매복 공격을 받았다. 바투틴은 차에서 뛰어내려 장교들과 함께 응사했으나, 오른쪽 엉덩이에 관통상을 입고 대퇴골이 골절되었다. 로브노 야전병원에서 1차 수술을 받고 키예프로 이송되었으나, 상태는 악화되었다. 소련 최고의 외과의들(부르덴코, 바쿨레프, 유딘)이 투입되고 당시 희귀했던 페니실린까지 사용했지만, 3월 23일 가스괴저가 발병했다. 4월 5일 부르덴코가 오른쪽 다리를 고위 절단했으나 패혈증은 멈추지 않았고, 4월 15일 바투틴은 42세로 사망했다.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스탈린이 미국산 페니실린 사용을 승인하지 않아 바투틴을 살릴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키예프 병원에서 페니실린이 투여되었다. 바투틴은 키예프 마린스키 공원에 안장되었고, 1948년 부체티치의 손으로 8.55m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1965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가 추서되었다. 2023년 2월, 우크라이나 당국은 탈공산화 정책에 따라 키예프의 바투틴 기념비를 철거하고 항공박물관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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