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혁명 지도자·국가주석
1975년 12월 2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누학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선출했다.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의장은 누학이 아닌 카이손 폼비한으로 기록되어 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창당 멤버이자 파테트라오 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다. 시암(현 태국) 무크다한의 라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55년 창당 당시 정치국에서 카이손 다음 서열이었고 1972년 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에 들어가 경제 업무를 맡았다. 1975년 이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냈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주석을 지냈다.
다른 이름: 누학 품사반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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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96
라오인민혁명당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45라오스 혁명운동 창립 참여
- 1949동부지역 라오 저항위원회 의장
- 1950라오 저항정부 재무장관
- 1954제네바 회담 파테트라오 대표
- 1955창당대회에서 정치국 서열 2위
- 1972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진입, 경제 업무 담당
- 1975부총리 겸 재무장관
- 1989제2기 최고인민의회 의장
- 1992국가주석
관련 역사 사건
1945년 이전의 성장과 항쟁
누학 품사완은 1914년 무크다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사완나켓으로 옮겨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1941년 라오스와 베트남을 오가는 자신의 운송 사업을 세웠고, 그 무렵 베트남 독립동맹(베트민)에 포섭되었다. 1945년 이후 수파누봉과 연락을 맺고 하노이에서 라오족 민족주의 조직인 라오 이사라를 대표했으며,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라오스-베트남 국경 산악 지역에서 베트민과 긴밀히 협조하여 유격 활동을 지휘했다. 195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입당한 뒤 라오스 자유전선 회의에서 파테트라오 저항정부의 경제·재정 담당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954년 제네바 회의에 파테트라오 대표로 참석했다. 이 시기의 활동은 그를 30여 년에 걸친 라오스 내전에서 혁명세력의 지도부로 자리 잡게 한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