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바로

Odilon Barrot

「왕조 반대파」를 이끌고 1848~1849년 루이 나폴레옹의 첫 내각을 맡은 자유주의 정치가

1791년 로제르 도 빌포르에서 국민공회 의원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의 변호사가 되었다. 1830년 7월 혁명에 가담했고 센 도지사를 지냈다. 1831년부터 외르 도 하원의원으로 「왕정의 기반 확대」를 외치며 입헌 군주정 안의 개혁을 요구했다. 1847~1848년 개혁 연회를 조직했으나 혁명의 힘을 내다보지 못했고, 1848년 2월 24일 오를레앙 공작부인의 섭정을 지지했다가 때를 놓쳤다. 공화국을 받아들이고 카베냐크를 지지했으며, 1848년 12월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 아래 법무장관 겸 내각의 수반이 되어 1849년 10월 31일 해임될 때까지 이끌었다. 1851년 쿠데타에 반대하다 잠시 갇혔고, 1872년 국무원장이 되었다가 1873년 죽었다.

다른 이름: 카미유 이아생트 오딜롱 바로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