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그 겐리호비치 이바놉스키

Олег Генрихович Иванов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계 1922–2014 ○ 자연사

초기 우주선의 조립과 시험을 이끈 설계자

가가린은 해치 수리를 마친 이바놉스키에게 말했다. ‘그때 네 얼굴을 봤어야 해, 녹슨 금속의 온갖 색이 지나가더군.’

올레그 이바놉스키는 전쟁 경험 뒤 로켓·우주기술 설계자가 되어 소련 우주계획의 초기 체계를 현장에서 구현했다. 그는 미하일 호먀코프의 대리로 스푸트니크 1호의 조립과 시험을 이끌었고, 이어 달·행성 자동정거장과 보스토크 유인우주선 개발을 담당했다. 가가린의 첫 비행을 준비한 뒤 라보치킨 설계국에서 달 탐사와 행성 연구용 기체를 지휘했으며, 은퇴 후에는 우주기술 박물관에서 그 역사를 보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국경수비대에서 근위 기병 방첩장교까지

이바놉스키는 1940년 붉은군대에 징집되어 서부 우크라이나의 소련-독일 국경 92 국경수비연대 9초소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대조국전쟁기에는 적군병·하사·근위상급중위를 거쳐 제250 쿠반-흑해(이후 제29 근위) 카자크기병연대의 방첩 담당관으로서 제11(이후 제8 근위) 기병사단, 제7(1943년 1월 19일부터 제6 근위) 기병군단에 배속되었다. 그는 발루이키(1943년 1월 19일), 로브노(1944년 2월 2일), 두브노(1944년 3월 17~18일), 야누프(1944년 7월 26일) 등지의 도시 해방 전투에 참가했으며, 1943년에는 스몰렌스크 지방과 벨라루시를, 1944년 봄과 여름에는 서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거쳐 루마니아·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전투를 치렀다. 1945년 5월 14일 프라하 부근에서 8 근위 로브노 기병사단 소속으로 종전을 맞았다. 1945년 6월 24일 붉은광장 승전 열병식에 제2 우크라이나 전선 혼성연대 기병 카자크 부대의 도보 대형으로 참가했고, 같은 해 11월 7일 열병식에도 섰다. 1943년 1월 발루이키 해방 전투에서 탱크 기관총에 목과 어깨를 중상당한 그는 1946년 장애로 제대했는데, 의학적 소견에는 '중노동과 중정신노동 없이 단축 근무로 민간기관에 종사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제대 후인 1946~1947년에는 미티시에 있던 붉은군대 통신과학연구소에서 실험조교로 일하며 우주기술 분야로 넘어갈 다리를 놓았다. 그의 전시 경험은 훗날 회고록 《스메르시 장교의 수기》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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