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표도로비치 지가레프

Павел Фёдорович Жигар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0–1963 ○ 자연사

바르바로사 작전의 폭풍 속에서 소련 공군을 지휘하고, 해빙기에는 다시 공군을 재건한 두 번의 공군 총사령관

공장 전보들이 증명한 진실: 701대의 완성 항공기가 조종사 부족으로 공장 비행장에 묶여 있었다. 스탈린 앞에서 지가레프의 '전투 불가' 이야기는 산산조각 났고, 스탈린은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비열한 놈! 꺼져!"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기병에서 항공으로 전환한 소련 공군 지도자였다. 1941년 6월 독일 침공 직후 공군 총사령관에 올랐으나, 전쟁 첫해의 참담한 손실과 항공기 생산을 둘러싼 스탈린과의 대면에서 거짓말이 발각되어 1942년 4월 경질되었다. 이후 극동전선 공군을 지휘하며 1945년 소일전쟁에서 제10항공군을 이끌었고, 전후 장거리 항공대를 지휘하다 1949년 다시 공군 총사령관으로 복귀하여 1957년까지 재임하며 제트기 전환을 주도했다. 1955년 항공 총원수로 진급했고, 말년에는 민간항공총국장과 방공군사령학교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중국 파견과 의용 조종사 집단 지휘

지가레프의 경력에서 중국 파견은 전쟁이 임박한 시기의 실전 경험이다. 1937년 그는 대일 항전에 참전하기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어 소련 의용 조종사 집단을 지휘했고, 소련 대사관의 항공 담당 무관보로 일했다. 당시 장제스 정부군과 공산당은 일본에 맞서 임시 동맹을 맺고 있었고, 지가레프는 그 편에서 일본군 항공기의 공격을 격퇴하는 작전, 방공 조직, 소련제 항공기를 다루는 중국 조종사 훈련을 맡았다. 항공기를 분해해 상자에 담아 알마티 인근까지 운반한 뒤 조립해 란저우로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다는 가족 증언이 전하는데, 항로는 지형이 험하고 기상이 나빠 위험이 컸고 무선 통신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고 일부는 지금도 비밀로 분류되어 있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높이 평가되어 1938년 9월 귀국한 뒤 붉은 군대 공군 전투훈련국장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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