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예피모비치 셸레스트

Пётр Ефимович Шелест
소련 우크라이나 1908–1996 ↓ 해임 1972

우크라이나 문화투자로 밀려난 공화국 제1서기

수슬로프가 "그대의 카자크는 시대착오요!"라고 외치자, 셸레스트는 "카자크가 없었다면 자네도 여기 없었을 것이네. 그들은 유목민 무리로부터 국경을 가슴으로 막아냈어." 하고 받아쳤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내며 흐루쇼프에서 브레즈네프로 넘어가는 전환기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위기를 관통했다. 호르티차 역사보호구, 피로히우 민속건축박물관, 26권짜리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의 역사』 등 우크라이나 문화유산 사업에 대규모 재정을 배정했다. 소비에트 연방 틀 안에서 우크라이나의 경제·문화적 이해를 대변하다가 1972년 브레즈네프 파벌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혐의로 해임되었으며, 그의 몰락은 소비에트 연방제에서 공화국 자율성과 중앙 통제 사이의 긴장을 상징한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우리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1970)

1970년 셸레스트는 우크라이나어로 『우크라이나여, 우리의 소비에트 땅이여』(Ukraïno nasha Radians'ka)를 출간했다. 10만 부가 빠르게 팔린 이 책은 우크라이나 역사 스케치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자포로제 코사크의 폴란드·타타르 봉건 영주에 대한 투쟁을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로 칭송했다. 이는 19세기 우크라이나 애국주의 역사서술의 주제를 소비에트 담론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출간 직후 모스크바 중앙 지도부는 이 책을 문제시했으며, 1973년 4월 우크라이나 기관지에 게재된 익명 기사는 이 책을 '이념적 오류', '사실 오류', '편집상의 실수'로 공격하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책은 셸레스트 해임의 핵심적 증거물이 되었고, 그의 후임 볼로디미르 셰르비츠키 치하에서는 소장 도서관에서 회수되었다. 셸레스트의 책은 소비에트 연방제 내에서 공화국 중심의 민족 서사가 중앙의 '단일 소비에트 인민' 노선과 충돌한 가장 선명한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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