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루 그로자

Petru Groza
루마니아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1884–1958 ○ 재임 중 사망

공산당원이 아닌 지주 변호사로 공산 정권의 첫 총리와 국가원수를 지낸 「붉은 부르주아」

1945년 3월 초 비신스키는 부쿠레슈티로 날아와 미하이 국왕에게 두 시간 안에 그로자를 총리로 임명하라고 요구했고, 거부하면 루마니아의 독립 국가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라데스쿠 정부는 무너졌고 3월 6일 그로자 정부가 들어섰다.

트란실바니아 후네도아라의 정교회 사제 집안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베를린·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이자 지주였다. 헝가리 의회 시절 루마니아 민족당에서 출발해 1920년대 아베레스쿠 정부의 장관을 두 번 지냈고, 1933년 데바에서 농민 조직 「농민전선」을 세워 1935년 체베아 협정으로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1944년 8월 23일 뒤 부총리를 거쳐 1945년 3월 6일 소련 외무부 부인민위원 비신스키가 왕궁에서 강요한 대로 총리가 되었고, 곧바로 토지개혁을 공포해 대지주의 땅을 나누었다. 1945년 여름 미하이 국왕이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법령 서명을 거부하는 「국왕 파업」에 들어갔지만 그는 소련의 지지를 믿고 버텼다. 1946년 선거 조작과 1947년 국민농민당 해산을 거쳐 그해 12월 30일 게오르기우데지와 함께 국왕에게 퇴위를 강요했다. 1952년 6월까지 총리로 있다가 대국민의회 간부회 의장, 곧 명목상 국가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끝내 공산당에 들지 않은 부유한 지주로서 트란실바니아 헝가리인 소수민족에 우호적이었고, 스스로를 「붉은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재담으로 유명했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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