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원이 아닌 지주 변호사로 공산 정권의 첫 총리와 국가원수를 지낸 「붉은 부르주아」
1945년 3월 초 비신스키는 부쿠레슈티로 날아와 미하이 국왕에게 두 시간 안에 그로자를 총리로 임명하라고 요구했고, 거부하면 루마니아의 독립 국가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데스쿠 정부는 무너졌고 3월 6일 그로자 정부가 들어섰다.
트란실바니아 후네도아라의 정교회 사제 집안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베를린·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이자 지주였다. 헝가리 의회 시절 루마니아 민족당에서 출발해 1920년대 아베레스쿠 정부의 장관을 두 번 지냈고, 1933년 데바에서 농민 조직 「농민전선」을 세워 1935년 체베아 협정으로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1944년 8월 23일 뒤 부총리를 거쳐 1945년 3월 6일 소련 외무부 부인민위원 비신스키가 왕궁에서 강요한 대로 총리가 되었고, 곧바로 토지개혁을 공포해 대지주의 땅을 나누었다. 1945년 여름 미하이 국왕이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법령 서명을 거부하는 「국왕 파업」에 들어갔지만 그는 소련의 지지를 믿고 버텼다. 1946년 선거 조작과 1947년 국민농민당 해산을 거쳐 그해 12월 30일 게오르기우데지와 함께 국왕에게 퇴위를 강요했다. 1952년 6월까지 총리로 있다가 대국민의회 간부회 의장, 곧 명목상 국가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끝내 공산당에 들지 않은 부유한 지주로서 트란실바니아 헝가리인 소수민족에 우호적이었고, 스스로를 「붉은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재담으로 유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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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1920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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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3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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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53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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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58
루마니아 국가기관총리·대국민의회 간부회 의장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20–1921아베레스쿠 정부 장관
- 1926–1927아베레스쿠 정부 장관
- 1933농민전선 창설
- 1935체베아 협정, 공산당과 제휴
- 1944–1945부총리
- 1945–1952총리
- 194712월 30일 미하이 국왕 퇴위 강요
- 1952–1958대국민의회 간부회 의장(국가원수)
관련 역사 사건
1948~1952년 스탈린주의 전환기 총리직
그로자는 1947년 12월 30일 왕정을 무너뜨린 뒤에도 1952년 6월 2일까지 총리직을 유지했다. 이 시기의 통치는 앞선 연합 정부의 외양과 다른 성격을 띠었다. 소련 모델에 따른 사회 조직과 관리 방식이 강제되었고, 1948년 6월 11일 그의 내각은 산업 국유화법을 통과시켜 산업·은행·운송 부문에서 사적 소유를 없애고 공적 소유를 일반화했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창설되어 경제 중앙집권을 기초로 계획적 발전을 관장했고, 1951년부터는 5개년 계획이 시행되었다. 농업에서도 소련 모델을 따라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이 세워졌으며, 농민은 0.15헥타르를 넘지 않는 소규모 토지만 보유할 수 있었다. 1948년 2월 24일 하원이 해산되고 3월 28일 대국민의회 선거가 치러졌으며, 그 첫 과업은 새 헌법의 작성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개헌과 국유화·집단화 조치는 전후 인민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공통된 경로를 따랐다. 1952년 6월 직무를 넘긴 뒤에도 그는 명목상 국가원수로서 이 체제의 상징적 정점에 남아 있었다. 이는 대지주이자 변호사였던 그가 스스로 「붉은 부르주아」라 자칭했던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때 그가 지도하던 농민전선은 1953년 2월 7일 해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