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다이

Pierre d'Ailly
가톨릭교회 프랑스 프랑스 1351–1420 ○ 자연사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교회 대분열을 끝내는 데 앞장선 프랑스 추기경

1351년 무렵 콩피에뉴에서 태어나 파리 대학에서 공부했고 1381년 신학 박사가 되었다. 1389~1395년 파리 대학 총장을 지냈고 장 제르송이 그의 제자였다. 두 교황이 맞선 교회 대분열을 공의회로 끝내자고 주장했다. 국왕의 고해 신부를 거쳐 르퓌·캉브레 주교가 되었고, 1411년 추기경에 올랐다.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서 제르송과 함께 손꼽히는 신학자로 요한 23세에 맞서 교회의 통일과 개혁을 이끌었고, 얀 후스 재판에도 관여했다. 『세계의 형상』은 콜럼버스가 지구 크기를 어림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1420년 아비뇽에서 죽었다.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에서 그의 말로 인용한 구절은 잘못 붙인 것이라고 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