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장,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처형된 6인 중 하나
1949년 8월 13일, 라주틴은 동료 레닌그라드 지도부와 함께 게오르기 말렌코프의 집무실로 호출되어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 페트로파블롭스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4세에 철도 정비공으로 노동을 시작했다. 콤소몰 간부를 거쳐 1937년 레닌그라드로 옮겼고, 포위전 당시 무역·공업 담당 시당 서기로 도시 보급을 책임졌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장으로 재임하며 전후 도시 재건 계획, 텔레비전 방송 재개, 아브로라 순양함 기념화를 진두지휘했다. 1949년 8월 말렌코프 집무실에서 동료 지도부와 함께 체포되어,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요 피고인 6인 중 하나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0월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19–1925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철도 정비공으로 노동
- 1925–1931콤소몰 서기·노동부장 등 카자흐 자치공화국 콤소몰·교육인민위원부 간부
- 1931–1937레닌그라드 냉동공업대학 수학; 프룬제 구당 위원회 지도원
- 1937–1941레닌그라드 시당 무역부장, 식품·무역부 부장
- 1941–1944레닌그라드 시당 무역·공업 담당 서기, 포위전 중 도시 보급 책임
- 1944–1946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회 제1부의장
- 1946–1949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회 위원장 (사실상 시장)
- 1949–1950레닌그라드 사건: 8월 13일 체포, 1950년 9월 30일 사형 선고, 10월 1일 처형; 1954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