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게오르기예비치 라주틴

Пётр Георгиевич Лазут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50 ✕ 처형

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장,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처형된 6인 중 하나

1949년 8월 13일, 라주틴은 동료 레닌그라드 지도부와 함께 게오르기 말렌코프의 집무실로 호출되어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 페트로파블롭스크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4세에 철도 정비공으로 노동을 시작했다. 콤소몰 간부를 거쳐 1937년 레닌그라드로 옮겼고, 포위전 당시 무역·공업 담당 시당 서기로 도시 보급을 책임졌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장으로 재임하며 전후 도시 재건 계획, 텔레비전 방송 재개, 아브로라 순양함 기념화를 진두지휘했다. 1949년 8월 말렌코프 집무실에서 동료 지도부와 함께 체포되어,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요 피고인 6인 중 하나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0월 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포위된 레닌그라드의 보급과 방어

1941년부터 레닌그라드 시당에서 무역·공업 담당 서기로 일하며, 표트르 라주틴은 포위된 도시의 보급과 방어 조직에 참여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백과사전은 그를 1941~1944년 레닌그라드 방어의 조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포위전 동안 레닌그라드 시당의 무역·공업 담당 서기를 지냈다고 밝힌다. 이 역할은 군대와 주민에게 필요한 물자의 조달·분배가 전시 도시 행정의 핵심 과제였음을 보여준다. 전쟁 뒤 그는 1946년 4월 레닌그라드 시 집행위원장에 취임했다. 후대 연구는 레닌그라드 지도부 세대가 전쟁과 봉쇄기에 역량을 시험받은 뒤 전후 경제의 강제적 복구를 이끌었다고 설명하며, 라주틴의 전시 보급 업무를 그 경력의 중요한 단계로 위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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