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로 《인터내셔널》을 처음 울린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이자 1927년 당의 지도자
1935년 6월 18일, 장팅 중산공원의 작은 언덕. 총살형 집행을 앞둔 취추바이는 풀밭에 앉아 집행인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로 여기가 좋군!" 그리고 《인터내셔널》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5·4운동 세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러시아어를 익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볼셰비키 혁명의 현장을 중국에 생생히 전했다. 1923년 귀국 후 천두슈의 뒤를 이어 CCP 임시 중앙을 이끌며 광저우 봉기 등 무장투쟁 노선을 추진했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실각 후에는 루쉰·마오둔과 함께 좌익작가연맹을 이끌며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중국에 정초했고,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러시아·소비에트 문학 번역에 헌신했다. 1935년 국민당에 체포되어 장팅에서 총살당했으며, 사형장까지 《인터내셔널》을 부른 최후로 혁명적 순교의 상징이 되었다.
경력 연표
- 1920–1922《천바오》 모스크바 특파원
- 1922모스크바에서 중국 공산당 입당
- 1923CCP 중앙위원, 선전·기관지 편집 책임
- 1927–1928CCP 임시 정치국 수장 (사실상 당 지도자)
- 1928–1930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상무위원, CCP 대표단 단장
- 1930–1931CCP 중앙위원, 좌경폭동주의 비판 후 해임
- 1931–1934상하이 좌익작가연맹 지도, 루쉰과 공동 활동, 번역·문예비평
- 1934–1935중화소비에트공화국 교육인민위원, 《붉은 중국》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