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의 냉정한 항공전 지휘관
깊은 위기에서도 침착하고 결단력 있었으며, 모든 기회를 과감히 붙잡았다.
레이먼드 스프루언스는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작전을 지휘한 제독이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거느린 제16기동부대를 지휘해 일본의 항공모함 네 척을 격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신중한 판단과 침착한 지휘로 명성을 얻었으며, 전후에는 해군대학 총장과 필리핀 주재 대사를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7미국 해군사관학교 졸업
- 1913–1922구축함 지휘 및 태평양 함대 복무
- 1935–1938해군대학 교관
- 1938–1939전함 미시시피 함장
- 1942제16기동부대 지휘, 미드웨이 해전
- 1943–1945중부 태평양군 및 제5함대 사령관
- 1946–1948해군대학 총장
- 1952–1955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
관련 역사 사건
미드웨이의 지휘 결단과 '제독들의 제독'
스프루언스는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거의 우연히 역사의 무대에 섰다. 1942년 5월 말,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부대 지휘관 윌리엄 홀시 제독이 대상포진으로 입원하자, 니미츠 제독은 순양함 사단장으로서는 있으나 항공모함 공중전 경험이 전무했던 스프루언스를 제16기동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홀시는 니미츠에게 '스프루언스를 쓰라'고 직접 추천했고, 전투 경험이 풍부한 마일스 브라우닝 대령을 참모장으로 붙여 주었다. 스프루언스는 6월 4일 아침, 일본 항공모함이 미드웨이 급습에서 돌아온 기체를 수용하느라 무방비 상태에 놓인 순간을 노려, 편대를 완전히 집결시키기도 전에 즉시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이 과감한 결단은 일본 공격 부대가 반격을 준비하기도 전에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아카기와 카가를 직격하게 만들었다. 그는 승리에 안주하지 않고, 야간에 일본 수상함대가 역습을 노릴 수 있다고 판단해 동쪽으로 물러났다. 일부에서는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지만, 공식 해군 사가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은 그의 지휘를 '훌륭했다(superb)'고 평가하며 '침착하고 냉철하며 결단력 있으나 조언은 경청하고, 광범위하게 흩어진 병력의 판도를 머릿속에 두면서도 모든 기회를 과감히 움켜쥔' 지휘관이라고 썼다. 이후 필리핀 해 해전(1944)에서도 스프루언스는 사이판 상륙 작전을 방호하기 위해 일본 함대를 공격적으로 추격하기보다 후퇴를 택했고, 이로 인해 다시 '너무 신중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모리슨에게 '전술적으로는 나가서 일본 항모를 때려 잡는 편이 더 낫고 만족스러웠겠지만, 우리는 매우 중요하고 거대한 상륙 작전의 시작점에 있었고 그것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계산된 신중함 때문에 휘하 장교들 사이에서 '제독들의 제독(an Admiral's admiral)'으로 불렸다. 수병들은 홀시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대부분의 고급 장교들은 인쇄된 지시가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되고 언제나 규정대로 움직이는 스프루언스 휘하를 선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