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아덴의 총격으로 숨진 남예멘 국방장관
1986년 1월 13일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알리 나시르 무함마드의 경호원들이 반대파 정치국원들에게 발포했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남예멘의 군인·정치가로 예멘사회당 정치국원과 국방장관을 지냈다. 영국 식민 통치에 맞선 민족해방전선에 참여했고 독립 뒤 군에서 성장했으며, 당 분열 뒤 압둘파타흐 이스마일을 지지하는 알투그마 계열에 섰다. 1986년 1월 13일 아덴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알리 나시르 무함마드의 경호원들이 반대파 정치국원들에게 발포했을 때 숨졌다. 그의 죽음은 뒤이은 내전의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이름: 살리흐 무슬레 카심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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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남예멘 국가기관국방장관대표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60년대영국 식민 통치에 맞선 민족해방전선(NLF) 참여
- 1967 이후독립 뒤 남예멘 군에서 성장, 제22보병여단 지휘
- 1978예멘사회당 창당 당시 이미 당의 고위 인사
- 1979.08.11당내 분쟁 속에 내무장관직에서 해임
- 1980.10.16–1981.08.30내무장관 (사료에 따라 1980~1982년으로 기재되기도 함)
- 1981.08.30–1986.01.13국방장관, 1985년 2월 하이다르 알아타스 내각에서도 유임 (사료에 따라 1982년부터로 기재되기도 함)
- 1986.01.13아덴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총격에 사망
관련 역사 사건
당내 반대파와 1986년 위기
1980년대 초 예멘사회당에서 권력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자, 카심은 전 국방장관 알리 안타르와 함께 압둘파타흐 이스마일의 귀환을 추진한 이질적인 반대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1985년 3월 아덴에 돌아온 이스마일은 당내 영향력을 되찾으려 했고, 그해 제3차 당대회에서 대통령 알리 나시르 무함마드 측은 중앙위원회 다수를, 반대파는 정치국 통제권을 얻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 타협은 정치국의 새 책임자 임명을 둘러싼 대립을 해소하지 못했다.
1986년 1월 13일 회의 당일 아침, 반대파는 정치국의 책임 배분을 논의하려 했고, 무함마드 측 경호원들이 회의장 안에서 발포했다. 동시대의 《중동 연구·정보 프로젝트》(MERIP) 보도는 이 사건을 무함마드가 감행한 ‘선제 쿠데타’로 서술하며, 반대파가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전 방송 발표는 실제 재판이 없었고 발표 당시 피고들 가운데 일부가 살아 있었다고 지적한다. 카심은 회의장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후 아덴에서 일주일 넘게 전투가 이어져 무함마드와 그 지지 세력의 패배와 북쪽으로의 도피로 끝났다. 이 사태는 당내 권력 투쟁이 무력 충돌과 남예멘 내전으로 번진 과정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