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노동총연맹을 세우고 이끈 「순수하고 단순한」 노동조합주의의 상징
영국 태생의 미국 시가 제조공·노동조합 지도자. 런던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186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1886년 미국노동총연맹(AFL)을 세우고 1895년 한 해를 빼고 죽을 때까지 의장을 지냈다. 정당 정치 대신 단체교섭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을 추구했고, AFL 안의 반사회주의파를 이끌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지지했고 1919년 파리 강화회의 국제노동입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63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 1864시가 제조공 노동조합 제15지부에 들어갔다.
- 1875시가 제조공 국제노조 제144지부 위원장이 되었다.
- 1881조직노동조합연맹 창립에 참여했다.
- 1886미국노동총연맹(AFL) 의장이 되었다.
- 1919파리 강화회의 국제노동입법위원회 의장.
- 1924.12.11샌안토니오에서 사망했다.
「노조원증을 공부하라」: 정당 대신 노동조합
곰퍼스는 열 살에 시가 제조 견습공이 되었고, 1863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해 이듬해 열네 살에 시가 제조공 노동조합에 들어갔다. 1873년 독일 사회주의 망명자가 운영하는 숙련공 작업장으로 옮긴 일을 그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불렀다. 거기서 독일어를 배우고, 제1인터내셔널 서기를 지낸 카를 라우렐의 지도를 받았다. 라우렐은 사회주의 정치 운동보다 조직된 경제 운동인 노동조합을 믿으라고 권하며,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는 가되 당에는 들지 말라고 했다. 「노조원증을 공부하게, 샘. 생각이 그것과 맞지 않으면 그건 참이 아니야.」 곰퍼스는 그 뒤 노조원증을 모든 새 문제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이 마르크스의 「전투적 경제 강령」 대신 「정당 행동」을 앞세운 라살파에게 장악되었다고 불평했고, 1900년 대회에서는 사회주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노조에 관심을 잃는다」고 경고했다. 1881년 조직노동조합연맹 창립에 참여했고, 이 연맹은 1886년 미국노동총연맹으로 개편되어 그가 의장이 되었다. 그는 AFL 안의 반사회주의파를 이끌어 1894년 한 번만 사회주의자들에게 졌고, 1920년까지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탄광과 의류 노조 몇 곳으로 밀어냈다. 그는 아시아 이민을 강하게 반대해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지지했다.
1905년 서부광부연맹의 빌 헤이우드 등이 노동계급 전체를 조직해 자본주의를 대체하려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을 세우자, 곰퍼스와 AFL은 이들을 노동자를 돕기보다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이중 노조로 보고 맞섰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그는 전쟁 노력을 적극 지지했고, 전쟁에 반대한 IWW 지도자들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체포에 협조하며 「IWW는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똑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