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가키 세이시로

板垣征四郎

만주 점령을 현실로 만든 군부 책략가

1948년 옥중 일기에 그는 만주사변의 성공을 되돌아보며, 중국에 손댄 것이 잘못이었다고 썼다.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일본 제국 육군의 장교이자 정치가로, 만주사변과 중국 침략 확대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이시와라 간지와 함께 1931년 철도 폭파를 계획하고 관동군의 독단적 군사행동을 점령과 괴뢰국 수립으로 연결했다. 이후 육군대신과 여러 전선의 지휘관을 지냈으며,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침략전쟁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만주사변의 기획과 현지 군사행동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관동군의 참모로서 이시와라 간지와 함께 1931년 만주사변의 도발을 기획했다. 9월 18일 일본이 소유한 남만주철도 선로에서 일어난 폭발은 중국 측의 공격으로 꾸며졌으며, 두 사람은 이를 동북 중국 침공의 구실로 삼았다. 관동군은 도쿄 정부와 육군 지휘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그날 밤부터 봉천과 장춘 등 철도 연선의 요충지를 점령했다. 정부와 육군 참모본부가 사태 확대를 막으려 했음에도 관동군은 공격을 계속해 1932년 초 동북 중국을 장악하고 만주국을 세웠다. 이타가키의 역할은 현지 부대의 독단적 행동을 단순히 지지한 데 그치지 않고, 사전 모의한 도발을 침략 확대와 식민 지배의 제도화로 연결한 것이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