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시대 학문 정통성의 문지기
1966년 아카데미 정회원 선거에서 역사학부는 그를 통과시켰지만, 총회에서 노벨상 수상자 이고리 탐이 반대 연설을 하자 표결은 부결되었다. 10년 뒤 통신회원 선출은 '절대 정회원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8년간 중앙위 과학·교육기관부장을 지내며 소련 학계의 인사·교과과정·출판을 통제한 브레즈네프 시대 이념 관료였다. 박사 학위 논문과 주요 저작들은 집단화의 공식 역사서술을 형성했고, 1960년대 중반 스탈린 복권 캠페인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모스크바 고등당학교 부학장과 몰도바 공화당학교 교장을 거쳐 브레즈네프의 개인 비서관을 지냈으며, 그 인연으로 과학·교육 부문의 최고 행정직에 올랐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1966년 아카데미 정회원 선거에서 노벨상 수상자 이고리 탐의 반대로 낙선할 정도로 불신을 샀으나, 10년 후 통신회원으로 선출되며 학계 내 입지를 유지했다.
경력 연표
- 1929–1934중부볼가 지방 콤소몰 활동, 1931년 당 입당
- 1935–1944펜자주 당 간부, 세르돕스크 지역위 제1서기, 펜자주당 농업부장
- 1948–1956몰도바 공화당학교 교장 겸 『몰도바 공산주의자』 편집장
- 1956–1960중앙위 서기 L.I. 브레즈네프 보좌관
- 1960–1965중앙위 고등당학교 연구부학장
- 1965–1983중앙위 과학·교육기관부장 — 학계 인사·교육과정·출판의 최종 심판관
스탈린 복권 캠페인 (1965–1966)
트라페즈니코프가 중앙위 과학·교육기관부장으로 임명된 직후인 1965년부터 1966년까지, 그는 브레즈네프 지도부 초기의 스탈린 복권 캠페인을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흐루쇼프 해빙기에 억눌렸던 스탈린 긍정론을 공식 이념 차원에서 재가동한 이 움직임은, 과학아카데미 역사학부와 고등교육기관의 교과과정·출판물을 통해 체계적으로 추진되었다. 트라페즈니코프는 자신의 저서 『전면적 사회주의 공세 시기의 공산당』(1961)과 『레닌주의와 농업-농민 문제』(1963–1965)에서 집단화 시기 스탈린의 지도력을 정당화하는 서사를 이미 구축해두었으며, 이 저작들은 복권 캠페인의 이론적 기반으로 기능했다. 소련 역사학계에서 이른바 '신스탈린주의'로 불린 이 전환은 1966년 제23차 당대회에서 브레즈네프가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자제하고 서기장 직함을 '제1서기'에서 '서기장'으로 복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니콜라이 미트로힌의 연구에 따르면, 트라페즈니코프가 이끄는 과학부는 이 시기 아카데미 내 '자유주의' 학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며 당 기구 중 가장 보수적인 이념 부서로 변모했다. 이 복권 캠페인은 당 내부의 저항과 지식인 사회의 반발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1970년대까지 지속된 보수적 학술 통제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