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를 모의한 강경파 장군, 1973년 10월 「죽음의 캐러밴」을 이끌다
1973년 10월 16일 그의 헬리콥터가 북부로 떠났다. 그 뒤 엿새 동안 라세레나에서 15명, 코피아포에서 13명, 안토파가스타에서 14명, 칼라마에서 26명이 「도주하려다」 죽었다고 발표되었다.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육군 장교로, 미국 포트레번워스 지휘참모대학에서 훈련받았고 1960년대 프레이 대통령의 부관을 지냈다. 1971년 발파라이소의 마이포 연대장으로 해군의 메리노 등과 쿠데타를 모의했고, 1973년 여름 아옌데와 군의 공동 정부 같은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쿠데타로 가자는 강경파 장군의 한 사람이었다. 9월 11일 라 모네다 공격 부대를 지휘했다. 10월 피노체트의 「대리인」 자격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남부와 북부의 군 주둔지를 돌았고, 그가 머문 도시들에서 재판 없는 처형이 잇따랐다. 레티그 위원회는 라세레나·안토파가스타·칼라마의 처형에 대표단원이 직접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나 치매 판정으로 복역하지 않았다.
다른 이름: 세르히오 빅토르 아레야노 스타르크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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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1976
칠레 국가기관육군 장군, 군사평의회 대리인대표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71–1972.12발파라이소 마이포 연대장, 쿠데타 모의
- 1973.01준장 진급
- 1973.09.11라 모네다 공격 지휘
- 1973.09.30–10.22「죽음의 캐러밴」
- 2008.10.15대법원 징역 6년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