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 야놉스카야

Софь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Яновская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러시아 1896–1966 ○ 당뇨병

소련 수리논리학을 부활시킨 볼셰비키 수학자

백군이 그녀를 총살하려 했을 때, 그녀의 키가 너무 작아 총알이 높은 모자에만 맞았고, 그녀는 다리 밑 강물로 떨어져 갈대숲에 숨어 살아남았다.

볼셰비키 혁명가 출신의 소비에트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소련에서 수리논리학을 독자적 학문 분야로 부활시키고 제도화한 창시자다. 내전기 백군에게 체포되어 총살 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며, 1933년 마르크스의 『수학 초고』를 발굴·출판하여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수학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1930년대에는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서 '관념론적' 수학을 공격했으나, 이후 입장을 전환하여 스탈린 시대에 탄압받던 수리논리학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되살려냈고, 1935년 비트겐슈타인의 소련 이주를 만류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수리논리학의 제도화와 번역

1925년부터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수학 방법론 세미나를 이끌었던 야놉스카야는 1930년대 중반 수리논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쟁 중 페름에서 일한 뒤 1943년 모스크바로 돌아와 수리논리학 연구 세미나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이반 제갈킨과 파벨 노비코프도 함께 지도했다. 그녀는 연구 모임뿐 아니라 교재와 전문 문헌을 통해 분야를 정착시키려 했다. 1947년에는 힐베르트와 아커만의 『이론논리학의 기초』 러시아어판을 번역·편집하고 주석과 서문을 썼다. 일부 소비에트 철학자들은 이 책이 논리에 관념론을 끌어들인다고 비판했다. 1948년에는 타르스키의 『논리학 및 연역과학 방법론 입문』과 굿스타인의 『수리논리학』 러시아어판에 서문을 붙였고, 클리니와 처치의 저작 번역도 추진했다. 1948년부터 역사수학 세미나의 성과를 『역사수학연구』로 출간했다. 1959년 3월 모스크바 국립대학 기계수학부에 수리논리학 кафед라가 신설되자 창설 때부터 교수로 참여했으며,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논리학 연구를 함께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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