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을 막은 소련 방공군 중령, 세르푸호프-15의 오경보를 직감으로 간파한 당직 장교
경보 사이렌이 울부짖었지만, 나는 '발사'라고 적힌 커다란 붉은 화면을 몇 초 동안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련 방공군 중령. 1983년 9월 26일 세르푸호프-15 조기경보사령부에서 오코 위성이 미 본토에서 발사된 ICBM 5기를 탐지했다고 경보했으나, 1차 타격치고는 규모가 너무 작고 지상레이더가 이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을 근거로 오경보로 판단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시스템 오류로 처리하여 소련의 핵 보복 발사를 막았으며, 훗날 '세계를 구한 사람'으로 불렸다. 사건 후 불명예도 표창도 받지 못했고 1984년 조기 퇴역했으며, 2017년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모스크바 교외에서 은둔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7–1967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57키예프 방공무선기술학교 입학
- 1957–1967방공군 복무, 레이더 체계 정비
- 1967–1972키예프 방공 고등공병무선기술학교 수학
- 1973세르푸호프-15 조기경보사령부 배치
- 1983.09.26오코 위성 오경보 당직 근무, 핵 보복 발사 저지
- 1984중령으로 퇴역
- 1984–1990s조기경보체계 개발 연구소 근무
관련 역사 사건
1983년 조기경보 오경보와 핵 위기
1983년 9월 26일, 소련 조기경보 체계의 위성 부문 오코는 미국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경보를 냈고, 세르푸호프-15 지휘소 당직 장교였던 페트로프는 이를 오경보로 판단해 상급 지휘부에 보고했다. 핵무기 전문가 파벨 포드비그는 페트로프의 판단을 칭찬하면서도, 사건을 그가 혼자 핵전쟁을 막은 순간으로 묘사하는 통속적 서술은 과장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소련은 경보만으로 발사하는 발사경보 즉시발사 태세가 아니었고, 실제 핵폭발을 확인하기 전에는 보복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위성 경보는 의사결정 과정의 한 요소였으며, 판단은 여러 지휘 단계와 최고 지도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페트로프가 어떤 결과를 막았을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컴퓨터가 낸 오경보를 두고 그는 경보가 거짓이라고 상급 지휘부에 주장했으며, 그 상황에서의 판단과 행동은 핵위험을 줄이려는 중요한 기여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