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7월 왕정 마지막 여덟 해 동안 선거 개혁을 막은 독트리네르파 정치가
1803년 파리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고, 복고 왕정 말기 신문 《르 글로브》 창간에 참여해 경제 문제를 썼다. 1833년 샤랑트앵페리외르 도 하원의원이 되어 기조의 벗으로 독트리네르파에 섰다. 상업장관과 몰레 내각의 재무장관을 거쳐 1839년 내무장관이 되었고, 1840년 10월부터 1848년 2월 24일까지 다시 내무장관으로 기조 정책의 기둥 노릇을 했다. 이 시기 선거 개혁안을 모두 물리치며 “나라는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고, 정부가 미는 관선 후보를 널리 썼다. 1848년 혁명 뒤 기조와 함께 미움을 받아 영국에 머물다 돌아와 정계를 떠났다.
다른 이름: 샤를 마리 탕기 뒤샤텔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30국무원 위원
- 1833–1848샤랑트앵페리외르 도 하원의원
- 1834–1836상업·공공사업장관
- 1836–1837재무장관
- 1839–1840내무장관
- 1840–1848기조 정부의 내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