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892–1955 ○ 폐암

1948년 2월 비공산당 경찰 간부 해임으로 정부 위기를 촉발시킨 체코슬로바키아 내무장관

각료회의가 해임 철회를 의결했지만, 노세크는 이를 무시하고 프라하 경찰 간부 8명을 공산당원으로 교체했다.

광부 출신으로 18세에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다. 나치 점령 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 망명정부 국가평의회 부의장을 지냈으며, 1945년 귀국 후 내무장관에 임명되어 경찰과 보안기구를 공산당 세력으로 재편했다. 1948년 2월 13일 비공산당 경찰 간부 8명을 해임함으로써 내각 위기를 유발했고, 이는 비공산당 장관 12명의 사직과 고트발트의 정권 장악으로 이어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런던 망명 시기(1939~1945)

1939년 3월 체코 땅이 나치 독일에 점령된 뒤 노세크는 게슈타포의 대규모 체포 작전인 '격자 작전'(Akce Mříže)으로 붙잡혀 프라하의 판크라츠 감옥에 수 주간 갇혔다. 석방된 그는 폴란드와 스웨덴을 거쳐 영국으로 탈출했고, 전쟁 기간 내내 그곳에 머물렀다. 망명지에서 그는 공산주의자 망명자 집단의 지도적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으며, 1941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국가평의회 의원, 1942년부터는 그 부의장을 지냈다. 국가평의회는 에드바르트 베네시가 이끈 런던 망명정부의 자문·감독 기구였으나, 노세크의 활동은 고트발트가 이끄는 모스크바의 공산당 지도부가 지휘했다. 1945년 4월 코시체에서 출범한 정부에 내무장관으로 입각하면서 망명 생활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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