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빠오

ວ່າງປາວ
라오스 국가기관 반혁명 라오스 왕국 몽족 1929–2011 ○ 미국에서 병사(폐렴 · 심장 합병증)

라오스 왕국군 장성, 몽족 ‘비밀군대’ 지휘

1975년 5월의 시점을 두고 사료가 갈린다. 한쪽은 5월 5일 수바나 푸마 앞에서 협력을 요구받은 때를, 다른 쪽은 5월 14일 헬리콥터로 롱티엥을 떠나며 포격이 시작된 때를 종결로 본다.

라오스 시엥쿠앙 주 농헷 출신 몽족 군인. 왕국군에서 장성까지 오른 유일한 몽족이었다. 1960~70년대 롱티엥을 근거지로 중앙정보국이 훈련·지원한 비정규 ‘비밀군대’를 지휘하며 파테트라오와 베트남인민군에 맞섰다. 1975년 5월 공산 세력의 장악 속에 태국으로 빠져나온 뒤 미국으로 건너가 몬태나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했고, 미국 몽족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1980~90년대 태국 내 난민 강제 송환 저지에 힘을 보탰다. 1981년 라오스 국가해방통일전선(네오홈) 창립에 참여했다. 2007년 미국에서 라오스 정부 전복 모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2009년 모든 연방 혐의가 취하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75년 롱티엥 철수와 몽족 난민

1975년 5월 북베트남군과 파테트라오가 왕국군 진지를 장악하자, 방 빠오와 약 2,500명의 몽족 군인 및 가족은 롱티엥 공군기지에서 태국으로 공수되었다. 미네소타 역사협회 연표는 탈출을 바라며 롱티엥에 최대 3만 명의 다른 몽족이 모였다고 기록한다. 이 연표에 따르면 남겨진 사람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이는 지휘관의 철수와 그를 따르려는 대규모 인구의 곤경이 동시에 벌어진 장면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몽족 병사 3만~4만 명이 전투 중 사망했고 2,500~3,000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산된다. 협회 연표는 왕정 전복 뒤 파테트라오가 중앙정보국 편에 선 몽족 군인과 가족을 체포하거나 살해하려는 작전을 벌였으며, 수천 명이 태국으로 탈출하거나 대피했다고 서술한다. 이 난민 이동으로 몽족은 태국의 난민촌에 들어갔고, 1975년 11월 첫 몽족 가족이 미네소타에 재정착했다. 미국 난민법이 통과된 1980년 뒤 가장 큰 이주 물결이 이어졌다. 이 맥락에서 방 빠오의 1975년 철수는 전쟁에서의 패배뿐 아니라 군사적 동맹의 붕괴와 난민화가 남긴 결과를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