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덴 전쟁을 지휘한 소련 지상군 총사령관, 마지막 전시 세대 원수
1978년 3월, 지지가 탈환 작전: 페트로프는 정면 공격으로 속이고 주력은 헬기강습으로 북쪽에서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3월 4일 지지가가 해방되었고, 2주 안에 소말리아군은 에티오피아 영토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2차대전을 최전선에서 싸운 소련 원수. 오데사·세바스토폴·캅카스 방어전에서 시작해 우크라이나 해방, 루마니아·헝가리 전역까지 종군했으며 소위에서 소령까지 진급했다. 전후 프룬제 아카데미를 거쳐 극동에서 참모·지휘관으로 성장, 1972년 극동군관구 사령관에 올랐다. 1977–78년 오가덴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주재 소련 작전그룹을 지휘하며 지지가 탈환 작전을 입안해 전황을 결정지었다. 1980년 소련 지상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 1985년 국방제1차관을 지냈으며 1983년 소련원수로 진급했다. 브레즈네프 후기 소련 지상군의 중추를 이끈 전략가로, 냉전 말기 지상전력 현대화를 주도했다.
경력 연표
- 1939붉은 군대 입대
- 1941–1945소위에서 소령까지 진급, 오데사·세바스토폴·캅카스 방어전 및 우크라이나·루마니아·헝가리 전역 참전
- 1945–1948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속성과정 및 본과정 졸업
- 1953–1955제50소총연대장
- 1955–1957제39소총사단 참모장
- 1957–1961제129차량화소총사단장
- 1964–1966제5군 사령관
- 1966–1972극동군관구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 1972–1976극동군관구 사령관
- 1976–1978소련 지상군 제1부총사령관
- 1977–1978에티오피아 주재 소련 국방부 작전그룹장 (오가덴 전쟁)
- 1978–1980극동군 총사령관
- 1980–1985소련 지상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
- 1983소비에트 연방 원수 진급
- 1985–1986소련 국방제1차관
- 1986–1992소련 국방부 총감찰관
- 1992–2014러시아 연방 국방부 고문
관련 역사 사건
오가덴 전쟁 (1977–1978)
1977년 여름, 소말리아가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을 침공했을 때 소련은 양측 모두와 동맹 관계에 있었다. 모스크바는 혁명적 에티오피아를 선택했고, 페트로프는 1,500명의 소련 군사고문단을 이끌고 에티오피아에 파견되었다. 현장에 도착한 페트로프는 모스크바에 에티오피아군의 '참담한 상태'를 보고해야 했다. 개전 두 달 만에 오가덴의 90%가 소말리아군 수중에 들어갔고, 지지가와 카라마다 고개가 함락되자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은 거의 포로가 될 뻔했다. 페트로프는 1978년 1월 에티오피아·소련·쿠바 장교들로 구성된 최고군사전략위원회(SMSC) 의장으로 임명되어 반격을 총괄 기획했다. 그의 작전 계획은 소련식 돌파 전술을 기반으로 했으나, 에티오피아군의 전투력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쿠바 공수연대를 선봉에 세웠다. 결정적 순간은 지지가 탈환 작전이었다. 페트로프는 정면 공격으로 속이는 한편, 소련 조종사들이 모는 Mi-8과 Mi-6 헬리콥터로 쿠바 낙하산부대를 소말리아 방어선 후방에 공중 투하해 협공을 가했다. 1978년 3월 5일 지지가가 함락되고 소말리아군은 궤주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페트로프는 1982년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