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이오시포비치 스탈린

Василий Иосифович Стал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그루지야 1921–1962 ○ 알코올 중독

공군 중장이자 소련 아이스하키의 창시자, 지도자의 아들

1953년 3월 아버지의 장례식에 술에 취해 나타난 바실리는 '그들이 아버지를 독살했다'고 외쳤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체포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차남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로서 27회의 전투 출격을 수행하고 공군 중장까지 올랐다. 1948년 모스크바 군관구 공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1952년까지 재임했으며, 24세에 소련군 최연소 소장이 되는 등 급속한 승진은 부계의 후원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한 '지도자의 아들'을 넘어, 소련 아이스하키 연맹 초대 회장으로서 VVS 모스크바 팀을 창단하고 아나톨리 타라소프를 초대 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소련 하키의 제도적 기반을 다진 스포츠 행정가이기도 했다. 1953년 아버지의 사망 직후 반소비에트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블라디미르 중앙교도소에서 가명으로 복역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후 공군 지휘와 아이스하키

전쟁이 끝난 뒤 바실리 스탈린은 점령군의 일원으로 독일에 배치되었다. 1946년 항공 소장으로 승진했고, 1949년 5월 11일 항공 중장 계급을 받았다. 1948년에는 모스크바 군관구 공군 사령관이 되었다. 군 지휘와 함께 스포츠 행정에도 관여해 공군 팀 VVS 모스크바의 아이스하키 부문을 육성하고 아나톨리 타라소프를 1946-47 시즌 선수 겸 감독으로 영입했다. 타라소프는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스탈린과 의견이 맞지 않아 한 시즌 뒤 팀을 떠났다. 1950년 1월 스베르들롭스크에서 VVS 팀이 탑승한 항공기가 추락해 선수단이 사망했다. 이후 팀은 재건되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아이스하키 선수권에서 세 차례 연속 우승했다. 이 성과는 전후 소련 하키에서 팀의 중요성을 보여주지만, 이를 스탈린 한 사람의 공적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아버지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이후 바실리는 군에서 물러났고 VVS에서도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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