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을 정식화하고 1849년 망명 뒤 텍사스에 공동체를 세운 푸리에의 후계자
1808년 쥐라 도 살랭레뱅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나와 공병 장교가 되었다. 푸리에의 사상에 빠져 군을 떠났고, 『라 팔랑주』를 이끌다 1837년 푸리에가 죽자 그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사회적 운명』과 『민주주의 선언』을 썼고, 1848년 프랑스 사회주의자의 중심 구호가 된 「노동권」을 정식화했다. 1848년 몽타르지 의원으로 뽑혀 극좌에 앉았고, 헌법 기초 위원으로 6월 여성 참정권을 제안한 유일한 의원이었다. 1849년 파리에서 재선되었으나 6월 13일 봉기에 가담한 뒤 벨기에로 망명했다. 1855년 텍사스 댈러스 근처에 공동체 「라 레위니옹」을 세웠으나 실패했다. 1869년 돌아와 제1인터내셔널에 들었고 1893년 파리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빅토르 프로스페르 콩시데랑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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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1849
사회운동·조직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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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1849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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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1876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37푸리에파 운동 지도자
- 1848–1849몽타르지·파리 의원
- 18496월 13일 봉기 뒤 벨기에 망명
- 1855텍사스 「라 레위니옹」 공동체 창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