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라자레비치 긴즈부르크

Виталий Лазаревич Гинзбург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6–2009 ○ 심부전

수소폭탄의 '제2의 아이디어'에서 노벨상까지, 한 세기를 가로지른 이론물리학자

나는 수소폭탄 덕분에 살아남은 아주 드문—아마도 유일무이한—사람이다.

소련 이론물리학의 거장으로,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이고리 쿠르차토프가 이끄는 수소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이고리 탐의 이론팀 일원으로 참여해 중수소화리튬-6(LiD)을 열핵연료로 사용하는 '제2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며, 이는 1953년 소련 최초의 열핵무기 실험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50년 레프 란다우와 함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긴즈부르크-란다우 이론을 정립했고, 이 공로로 20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71년부터 1988년까지 레베데프 물리연구소(FIAN) 이론물리학부장을 지냈으며,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1966)으로서 소련 물리학의 제도적 중심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쟁기 라디오파 연구와 과학 경력의 출발

긴즈부르크는 1938년 이론물리학으로 방향을 바꾸어 전자기 복사와 전기역학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0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후보학위를 받고, 같은 해 9월 1일 레베데프 물리연구소(FIAN)에 들어가 박사학위 연구를 이어갔다. 독소전쟁 중 연구소가 과학아카데미와 함께 카잔으로 옮겨간 뒤에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대기 중 라디오파 전파를 조사했고, 방어에 유용하다고 여겨진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1942년 봄 박사학위 논문을 변론했으며, 카잔에서의 생활은 춥고 식량이 부족했지만 과학 연구는 계속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 고리키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새로 조직된 라디오물리학부에서 전파의 전파와 복사를 담당하는 강좌를 맡았다. 전쟁기에 전리층의 라디오파 전파를 연구한 경험이 이 임무와 맞닿아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와 고리키를 오가며 강의하고, 천체물리학·천문학 쪽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을 훈련했다. 이 일은 FIAN에서의 이론물리학 연구와 함께 그의 전파물리학·천체물리학 연구가 전개되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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