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의 후원으로 코롤료프를 넘었으나, 후원자가 몰락하자 밀려난 미사일 설계자
1958년 3월 8일, 첼로메이는 흐루쇼프의 아들 세르게이를 OKB-52의 엔지니어로 채용했다. 이 한 건의 인사로 그는 소련 최고 권력자의 눈과 귀를 직접 확보했고, 이후 6년간 코롤료프조차 넘볼 수 없는 정치적 후원 아래 소련 우주 계획의 정점으로 치솟았다.
소련의 대표적 로켓·우주기술 설계자로, OKB-52(후일 NPO 마시노스트로예니야)를 이끌며 프로톤 발사체, UR-100 대륙간탄도미사일, 알마즈 군사우주정거장, TKS 우주선을 만들었다. 1961년 코롤료프를 대신해 수석설계자회의 의장이 되었으나, 흐루쇼프의 아들 세르게이가 첼로메이 밑에서 일했던 인연 덕에 정치적 후원이 단단했다. 흐루쇼프 실각 후 우스티노프에게 밀려났고, 1981년에는 그의 우주 사업이 전면 중단되었다. 프로톤 로켓은 지금도 운용 중이며, UR-100은 소련 역사상 가장 많이 배치된 ICBM이다.
경력 연표
- 1937키예프 항공대학 졸업, 진동 이론 논문으로 주목
- 1941중앙항공발동기연구소(CIAM) 입소, VKP(b) 입당
- 1944–53OKB-51 소장 겸 수석설계자: V-1 기반 순항미사일 10Х 개발
- 1955OKB-52(현 NPO 마시노스트로예니야) 수석설계자
- 1961–64수석설계자회의 의장으로 코롤료프 계승
- 1965프로톤 발사체 첫 비행, UR-100 ICBM 배치 시작
- 1970s알마즈 군사우주정거장 · TKS 수송선 개발
- 1981–84우주 사업 중단 명령; 모교에서 강의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냄
관련 역사 사건
달 경쟁: UR-700과 LK-700
첼로메이는 1964년 소련 유인 달 착륙 경쟁에 뛰어들어 코롤료프의 N1-L3 계획에 맞서 UR-700 발사체와 LK-700 직접 상승 착륙선을 제안했다. 코롤료프가 지구 궤도 랑데부 방식을 택한 반면, 첼로메이는 UR-700으로 우주인 3명을 달 표면에 직접 보내는 방안을 구상했다. UR-700은 프로톤을 확장한 3단 로켓으로, 글루시코가 개발 중이던 RD-270 엔진을 묶어 1단 추력을 5,760톤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첼로메이는 이 로켓으로 달 착륙뿐 아니라 장기 체류를 위한 '달 탐사 복합체(LKE)': 6개월 임무의 기지 모듈, 대형 월면차, 유인 착륙선을 3회 발사로 구성하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흐루쇼프 실각으로 정치적 후원을 잃고, 코롤료프의 사망 후에도 우스티노프가 N1을 밀어붙이면서 UR-700은 1974년 전면 취소되었다. N1은 네 차례 발사 모두 실패했고, 소련은 결국 달에 사람을 보내지 못했다. 첼로메이의 구상은 기술적으로 야심찼지만 실행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소련 우주 계획의 '만약'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