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알렉세예비치 키릴린

Владимир Алексеевич Кириллин
소련 러시아 1913–1999 ○ 자연사

과학기술혁명기 소련 민간 R&D의 총괄 설계자

1980년 1월, 15년간 이끌어온 GKNT 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과학아카데미 고온연구 부문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축출이 아닌, 연구 현장으로의 자발적 복귀였다.

열물리학자로 스탈린상(1951)과 레닌상(1959)을 수상한 키릴린은, 1965년부터 15년간 국가과학기술위원회(GKNT) 의장 겸 각료회의 부의장으로서 소비에트 민간 R&D 전체를 총괄했다. CPSU 중앙위 과학부장(1955–1962)과 과학아카데미 부총재를 거친 그는, 과학기술혁명기 소련의 국가혁신전략을 입안·집행한 핵심 인물이었다. GKNT가 군산복합체의 R&D 예산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아카데미·산업·정부를 잇는 전방위 조정자로 활동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파괴시 운동과 국제과학외교

키릴린은 1963년 2월 5일부터 1년여간 소비에트 파괴시 위원회 의장과 파괴시 상임위원회·집행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63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제11차 파괴시 회의에서 「전면적·완전한 군비축소를 향하여」라는 기조연설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3월 개인적 사유로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과학아카데미 부총재와 GKNT 의장으로 재임하는 내내 소비에트 학자들의 파괴시 참여를 지속 지원했고, 해외의 주요 과학자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했다.

같은 시기 키릴린은 소비에트 유엔협회 회장(1963–1966)과 소비에트 평화수호위원회 위원도 겸하며 과학외교의 폭을 넓혔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전연방 계몽협회 '즈나니예' 이사장을 맡아 대중과학 보급에도 힘썼다. 이러한 국제 및 대중 활동은 브레즈네프 시기 GKNT 의장으로서 서방과의 과학기술 교류를 관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1970년 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에서 '과학과 인류에 대한 공로' 금메달을, 1972년 바르샤바 공과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동구권 과학계에서도 폭넓게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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