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규약위원회를 이끌고 뒤에 화해파가 된 중앙위원
야로슬라블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의 실업학교를 마쳤다. 1898년 페테르부르크 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야로슬라블과 보로네시로 쫓겨났고, 셰콜딘과 함께 북부 노동자 동맹을 조직했다. 1902년 망명해 《이스크라》의 운송 업무를 맡아 빌뉴스의 운송국을 이끌었다. 「보리스 글레보프」라는 가명으로 제2차 대회에 발언권 대의원으로 참석해 규약위원회 위원장이자 보고자를 맡았고, 레닌 지지자로 중앙위원에 뽑혔다. 대회 뒤에는 멘셰비키와의 화해를 앞세워 제3차 대회 소집에 반대했다. 1905년 2월 체포되었고, 1907년 이후 당 활동에서 물러났으며 1913년 하바롭스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이름: 보리스 글레보프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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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1903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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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905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98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 사건으로 체포
- 1902망명, 《이스크라》 운송 담당
- 1903.08.25–1905.02.22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
- 1905.02.22중앙위원들과 함께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