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 소련 고등교육을 총괄한 최장수 각료
소련 각료 중 31년 이상 단일 장관직을 유지한 인물은 옐류틴이 유일하다. 고등교육부는 1954년부터 1985년까지 단 한 번도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
사라토프의 철도원 가정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제강연구소를 졸업한 금속공학자로, 전기제강·페로합금 기술을 개척해 1952년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1945년 모교 소장이 되어 연구 중심 공과대학으로 탈바꿈시켰고, 1954년 고등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후 31년간 소련의 대학·전문학교 체계를 총괄했다. 재임 기간 고등교육기관과 재학생 수는 두 배 이상 확대되었고, 공학·자연과학 분야의 대규모 인력 양성 체계는 우주 개발과 군수산업을 뒷받침했다. 과학아카데미 준회원(1962)이자 당 중앙위원(1961–1986)으로서 연구·행정·정치를 연결하는 소련 테크노크라트의 전형이었다.
경력 연표
- 1930모스크바 제강연구소 졸업, 동 대학원 진학
- 1933–1941모스크바 제강연구소 도센트, 전연방 공업아카데미 부원장
- 1941–1943레닌그라드 포병기술학교 수료 후 포병기술장교 복무
- 1945–1951모스크바 제강연구소 소장(총장)
- 1951–1954소련 고등교육부 제1차관
- 1954–1959소련 고등교육부 장관
- 1959–1985소련 고등·중등전문교육부 장관
- 1961–1986CPSU 중앙위원회 위원
금속공학자로서의 과학적 업적
옐류틴은 31년 각료 생활 이전에 이미 정상급 금속공학자였다. 1930년 모스크바 제강연구소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전기제강과 페로합금 분야를 개척했다. 1947년에는 박사학위와 함께 교수 직함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1951년 공동 집필한 교과서 『페로합금 생산』(Производство ферросплавов)이다. 철강의 성질을 결정하는 합금철 제련 기술을 체계화한 이 저서는 소련 금속공학 교육의 표준 교재가 되었고, 이듬해 스탈린상 2등급을 수상했다. 1957년에는 증보판을 냈다.
1969년에는 동료 연구자 일곱 명과 함께 국가발견등록부 제143호에 등재된 과학적 발견 '금속탄화물 및 탄화물-탄소 공정조직에서 탄소의 가속 증발 현상'을 공동 저자로 등록했다. 이는 초고온 재료의 거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였다. 1972년에는 유리 파블로프와 공동으로 2권짜리 『고온 재료』(Высокотемпературные материалы)를 출간했고, 1976년에는 『산화금속과 탄소의 상호작용』을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행정 경력 내내 계속되었다. 1962년 과학아카데미 준회원(통신회원)으로 선출된 것도, 전적으로 정치적 임명이 아니라 금속공학자로서의 연구 실적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아들 알렉산드르 옐류틴(1937~2012) 또한 금속공학자로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고, 모스크바 제강연구소(MISiS)의 고온재료·공정·다이아몬드 학과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