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로드니

Walter Rodney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가이아나 가이아나 1942–1980 ✕ 암살

유럽이 아프리카를 어떻게 저발전시켰는가를 밝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자 범아프리카 운동가

"부자유하고 억압받는 자들 가운데 위대한 사람은 오직 억압자를 파괴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뿐이다" — 『유럽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발전시켰는가』 (1972)

가이아나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자 범아프리카 운동가로, 1972년 『유럽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발전시켰는가』에서 노예무역과 식민주의,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아프리카의 저발전을 구조적으로 생산했다고 논증해 제3세계 역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다르에스살람대학과 서인도제도대학 강단에서 탈식민 사회과학의 중심을 세웠고, 가이아나에서 다인종 노동계급 연대에 기반한 사회주의 정치를 전개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자메이카 추방과 가이아나 노동인민동맹

1968년 자메이카 서인도제도대학 모나 캠퍼스에서 강의하던 로드니는 노동계급 공동체, 특히 라스타파리와 교류하고 빈곤층을 외면하는 정부와 중산층 엘리트를 비판했다. 10월 캐나다 흑인작가회의에 참석한 뒤 자메이카 정부는 선동 혐의를 들어 그를 불온인물로 선언하고 재입국을 금지했다. 10월 16일 학생들이 항의 행진을 벌였고, 경찰의 강경 대응과 비학생들의 개입 속에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다. 당국은 모나 캠퍼스에 학생들을 며칠간 가둔 뒤 수업 복귀에 동의하도록 했다. 이 사건은 로드니가 자메이카에서 강의한 기간이 1년도 안 되었음에도 학생과 빈민 공동체를 연결한 정치 활동의 대중적 파장을 드러냈다. 그의 강연 세 편은 1969년 『내 형제들과의 그라운딩』에 실렸다.

1974년 로드니는 가이아나대학 아프리카사 교수직을 수락해 귀국했지만, 포브스 번햄의 인민민족회의 정부가 임용을 철회했다. 그는 가이아나에 남아 여러 소규모 조직이 결합해 1974년 결성한 노동인민동맹(WPA)의 지도자가 되었다. WPA는 아프리카계와 동인도계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인종 집단의 노동인민을 결집하고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려 했다. 로드니의 『가이아나 노동인민사, 1881-1905』는 두 공동체가 겪은 노동 및 경제 조건의 공통성을 역사적으로 제시했다. WPA는 1979년 6월 정당으로 선언했고, 양 집단을 잇는 조직 활동으로 번햄 정부에 새로운 정치적 도전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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