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

王力
중국공산당 마오주의 중국 중국 1922–1996 ○ 자연사

우한 사건에서 구타당한 중앙문혁소조의 이론가

장쑤 화이안 출신으로 1939년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산둥에서 기자·편집자로 일했다. 1953~1955년 베트남 노동당 선전 고문을 지냈고, 《홍기》를 거쳐 1963년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이 되었으며 「9평」의 주요 집필자였다. 문화대혁명 초 중앙문혁소조의 핵심이 되어 1967년 1월 선전 영도 소조장을 맡았다. 7월 우한에 중앙 대표로 갔다가 백만 웅사와 8201부대에 붙잡혀 구타당했다. 8월 7일 외교부 반란파를 부추긴 연설 뒤 영국 대표처 방화가 일어나자 체포되었고, 1968~1982년 친청 감옥에 갇혔다가 1983년 당에서 제명되었다. 회고록은 주요 1차 자료다.

다른 이름: 왕광빈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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