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사건에서 구타당한 중앙문혁소조의 이론가
장쑤 화이안 출신으로 1939년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산둥에서 기자·편집자로 일했다. 1953~1955년 베트남 노동당 선전 고문을 지냈고, 《홍기》를 거쳐 1963년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이 되었으며 「9평」의 주요 집필자였다. 문화대혁명 초 중앙문혁소조의 핵심이 되어 1967년 1월 선전 영도 소조장을 맡았다. 7월 우한에 중앙 대표로 갔다가 백만 웅사와 8201부대에 붙잡혀 구타당했다. 8월 7일 외교부 반란파를 부추긴 연설 뒤 영국 대표처 방화가 일어나자 체포되었고, 1968~1982년 친청 감옥에 갇혔다가 1983년 당에서 제명되었다. 회고록은 주요 1차 자료다.
다른 이름: 왕광빈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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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983
중국공산당대표
이념·선전- 중앙문화혁명소조 조원·선전 영도 소조장1966–1967
-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1963–1966외교·국제활동
경력 연표
- 1939중국공산당 입당
- 1943《투쟁생활》 주필
- 1953–1955베트남 노동당 선전 고문
- 1958《홍기》 근무
- 1963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 「9평」 집필
- 1966중앙문화혁명소조 조원
- 1967선전 영도 소조장, 우한 사건, 8월 체포
- 1968–1982친청 감옥 수감
- 1983당적 박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