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E. B. 듀보이스

W. E. B. Du Bois
공산주의 미국 아프리카계 미국인 1868–1963 ○ 자연사

「자본주의는 스스로 개혁할 수 없다」: 93세에 미국 공산당에 입당한 흑인 해방운동의 아버지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을 앞당기는 데 일조하고 싶다.」 — 1961년 93세의 나이로 미국 공산당에 제출한 입당 신청서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역사가, 범아프리카주의자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식인이다. NAACP 공동 창립자로서 기관지 『더 크라이시스』를 24년간 편집하며 흑인 민권운동의 방향을 이끌었고, 『흑인의 영혼』과 『미국의 흑인 재건』을 통해 미국 사회학과 역사학의 지형을 바꾸었다. 자본주의를 인종차별의 근본 원인으로 보았으며, 마르크스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의 결합을 추구했다. 1961년 93세의 나이로 미국 공산당에 입당했고, 콰메 은크루마의 초청으로 가나에 정착해 『아프리카나 백과사전』 편찬에 착수하던 중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재건시대의 흑인 노동과 민주주의

1935년 출간한 『미국의 흑인 재건』에서 듀보이스는 남북전쟁과 재건시대(1860~1880)에 흑인들이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려 한 역할을 서술했다. 그는 당시 학계의 지배적 서술이 재건을 실패로 규정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기여를 축소했다고 비판하며, 해방된 흑인들의 정치적 행위성을 중심에 놓았다. 전쟁 중 노예들이 농장 노동을 중단하고 북군 진영으로 이동한 일을 듀보이스는 노예제 남부의 경제와 권력관계를 흔든 대규모 총파업으로 해석했다. 이 이탈은 남부연합의 노동력 위기를 심화하고 북군에 노동자와 병사를 제공했으며, 노예제가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보았다.

듀보이스는 해방 이후 남부가 무질서에 빠졌다는 통념에 반대해, 재건기 정부들이 공교육·공중보건·복지기관과 공공 기반시설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한편 옛 플랜터층이 토지와 정치적 지배력을 되찾으려 했고, 준군사조직의 폭력이 흑인 조직화와 투표를 억압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흑인 해방노동자와 가난한 백인 노동자가 인종을 따라 분열되어 지주계급에 맞선 연합을 이루지 못했고, 이 분열이 백인 민주당의 주정부 장악, 짐크로 법과 흑인 및 다수 빈민 백인의 참정권 박탈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재건을 흑인 노동자의 집단적 행동과 인종적 분열을 함께 다루며, 민주주의의 성패를 노동과 정치권력의 관계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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