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L. 록하트 클레이턴

William L. Clayton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 1880–1966 ○ 자연사

세계 최대 면화상을 일군 자유무역론자, 유럽 붕괴를 경고한 메모로 마셜 플랜을 촉발한 국무차관

1947년 5월 27일 마셜 국무장관에게 보낸 메모에서 클레이턴은 이렇게 썼다: '즉각적이고 대규모인 미국의 원조 없이는 경제·사회·정치적 붕괴가 유럽을 뒤덮을 것입니다.'

클레이턴은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속기사로 출발해 앤더슨·클레이턴 사를 세계 최대 면화 무역회사로 키운 사업가였다. 자유무역을 신봉한 민주당원으로서 1944년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보, 1946년 경제담당 차관에 임명되었고, 1947년 5월 전후 유럽의 참상을 목격한 후 조지 마셜에게 보낸 「유럽의 위기」 메모에서 '즉각적이고 대규모인 미국의 원조 없이는 경제·사회·정치적 붕괴가 유럽을 뒤덮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메모는 마셜 플랜 발표의 직접적 촉매가 되었고, 찰스 볼런은 연설문 초안을 쓸 때 클레이턴의 문장을 대거 인용했다. 퇴임 후에도 자유무역과 대서양 동맹을 옹호하며 1961년 크리스천 허터와 애틀랜틱 카운슬을 공동 설립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럽 위기 진단과 원조 구상

1947년 5월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온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 윌리엄 클레이턴은 5월 27일 「유럽의 위기」 메모를 딘 애치슨에게 보내 조지 마셜과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산업 국유화, 토지개혁, 오래된 상업 관계의 단절, 민간기업의 자본 상실이 생산과 교역을 무너뜨렸다고 분석했다. 당시 영국·프랑스·이탈리아와 미국 점령하 독일 지역의 연간 국제수지 적자를 합계 최소 50억 달러로 추산했고, 그중 미국산 석탄 3천만 톤과 곡물 1,200만 톤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금·달러 보유고로는 그해 말까지만 적자를 감당할 수 있고 이탈리아는 그보다 일찍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보았다.

클레이턴은 미국이 3년 동안 매년 60억~70억 달러 상당의 물자를 무상 제공하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국가들이 공동 경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조는 석탄·식량·면화·담배·해운 서비스 등을 포함하고, 국제은행과 기금의 활동과 결합해 유럽의 생산 및 경제적 자립을 회복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는 미국의 생산능력은 충분하지만 원조 물자를 마련하려면 국내 소비와 재정정책을 조정하고, 부채가 아니라 세금으로 비용을 조달하며, 국민에게 계획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모는 유럽의 경제·사회·정치적 붕괴와 미국의 시장 상실·실업 위험을 함께 제기했다. 이후 애치슨은 클레이턴이 마셜 플랜의 최종 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으며, 1947년 6월 마셜의 하버드 연설은 유럽 공동계획과 미국 지원의 넓은 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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