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배운 물리학자에서 소련 핵무기 이론가·우주론의 거인이 된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1949년 8월 29일, 첫 소련 원자폭탄 실험 후 젤도비치가 떠올린 장면: "놀란 것은 풀이었다. 놀라운 정적이 흐르다가 갑자기 풀이 눕는 것이 보였다 — 충격파가 도착한 것이다. 정적과 쓰러진 풀, 그것이 핵폭발의 가장 강렬한 인상이었다."
민스크 유대인 가정 출신의 독학형 물리학자. 1939–1941년 하리톤과 우라늄 연쇄반응을 세계 최초로 계산했고, 아르자마스-16 이론부장으로 첫 소련 핵실험과 수소폭탄 계산을 주도했다. 1963년 핵무기 연구를 떠나 천체물리학으로 전환, 효과, 우주 대규모 구조, 블랙홀 증발의 기초를 개척했다. 1955년 '300인의 편지'에 서명, 영국 왕립학회·미국 국립과학원 외국회원.
경력 연표
- 1931–1934화학물리연구소 실험조수, 레닌그라드 대학 청강
- 1936이학준박사 취득 — 흡착이론
- 1939이학박사 취득 — 질소산화열역학(Zeldovich mechanism)
- 1939–1941하리톤과 우라늄 연쇄반응 최초 동역학 계산
- 1943–1946쿠르차토프 원자폭탄 팀 합류, 모스크바 비밀연구소
- 1946–1963아르자마스-16(KB-11) 이론부장 — 핵·열핵무기 계산 주도
- 1958–1987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63–1987천체물리학·우주론 전념 — 모스크바대 교수, 슈테른베르크 천문연구소
관련 역사 사건
연소·폭발 이론: 젤도비치 메커니즘과 ZND 모델
젤도비치가 핵무기 연구에 합류하기 전, 그의 주된 업적은 연소와 폭발의 물리화학에 있었다. 1939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연소 시 질소 산화 반응경로를 규명해 '젤도비치 메커니즘'을 정립했다. 이는 고온 연소가스에서 N₂가 NO로 전환되는 두 단계 라디칼 반응(O + N₂ → NO + N, N + O₂ → NO + O)을 기술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내연기관·화력발전·대기화학에서 열적 NOx 생성의 표준 이론으로 쓰인다.
1940년에는 기체 폭굉파의 1차원 정상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충격파 선단이 미반응 물질을 단열압축해 폰노이만 스파이크 상태에 이르게 한 뒤, 그 후방 반응대에서 발열화학반응이 진행되어 채프먼-주게 조건에서 종료된다는 모형이다. 거의 동시에 존 폰노이만과 베르너 되링이 독자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제안해, 오늘날 ZND(Zeldovich–von Neumann–Döring) 모델로 불린다. 1차원 정상이론의 한계는 이후 실험으로 밝혀졌지만, ZND 모델은 여전히 폭굉파 물리의 출발점이자 교과서적 기초다. 이 두 성과를 포함한 연소·폭발 연구로 젤도비치는 1943년 스탈린상을 처음 수상했고, 국제연소학회는 그의 이름을 딴 금메달을 제정했다.
핵무기 이론가: 첫 소련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젤도비치는 소련 핵무기 계획의 비밀스러운 주역이었다. 1939년 유리 하리톤과 함께 우라늄 연쇄반응의 동역학을 세계 최초로 계산했으나, 당시 소련 과학계는 이 연구의 군사적 함의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1943년 이고리 쿠르차토프의 요청으로 원자폭탄 계획에 합류했고, 1946년부터 아르자마스-16(KB-11)의 이론부장으로 임명되어 소련 핵물리학자들의 이론 작업 전반을 지휘했다.
1949년 8월 29일, 젤도비치가 이끈 이론팀의 계산에 기초한 첫 소련 원자폭탄 RDS-1이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성공적으로 실험되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풀이었다. 놀라운 정적이 흐르다가 갑자기 풀이 눕는 것이 보였다 — 충격파가 도달한 것이다. 정적과 쓰러진 풀, 그것이 핵폭발의 가장 강렬한 인상이었다." 이 공로로 첫 번째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와 스탈린상을 받았다.
이후 수소폭탄 개발로 방향을 전환해 1950–1953년 열핵융합의 타당성 계산을 수행했으며, 안드레이 사하로프 그룹과 병행해 작업했다. 1953년 RDS-6s(첫 소련 열핵무기) 실험과 1955년 2단계 RDS-37의 성공에 그의 이론 작업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49년, 1954년, 1956년 세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에 오른 인물은 소련에서 극소수였으며, 젤도비치는 그중 한 명이다. 1963년 가을 핵무기 연구를 떠나 천체물리학으로 전환했지만, 그가 구축한 이론적 토대(폭발 유체역학, 고압 물질 물리학, 중성자 수송 이론)는 소련 핵무기 설계의 기초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