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전의 한계를 드러낸 일본군 장성
1939년 7월 9일, 전차의 절반 이상을 잃은 야스오카 파견대는 해산되고 그는 지휘에서 해임되었다.
야스오카 마사오미는 일본 제국 육군의 장성으로, 보병 중심 군대에서 전차 운용을 맡은 지휘관이었다. 1939년 노몬한 전투에서 제1전차단을 중심으로 임시 편성된 야스오카 파견대를 지휘해 7월 공세에 참가했지만, 전차와 보병·포병의 협조가 무너진 가운데 장갑차량의 절반 이상을 잃고 부대가 해산되었다. 이후 예비역에 편입되었고,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에 참여한 뒤 전후 전범 혐의로 체포되어 1948년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6육군 보병 소위, 보병 제43연대
- 1914육군대학 졸업
- 1935육군 소장, 보병 제30여단장
- 1938육군 중장, 독립혼성 제1여단장
- 1939제1전차단장, 노몬한의 야스오카 파견대 지휘
- 1941예비역 편입
- 1942–1945육군 사정장관, 수라바야 주지사
- 1945–1948전후 전범 혐의로 체포, 1948년 사망
관련 역사 사건
노몬한 전투의 기갑 파견대 지휘
1939년 7월 관동군은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몽골군을 포위하려는 공세의 일환으로 야스오카 파견대를 편성했다. 야스오카가 지휘한 부대는 제3·제4전차연대 2개를 중심으로 보병·포병·공병을 결합했으며, 전체 공세 병력은 약 1만 5천 명, 전차 87대와 포 116문, 항공기 180대에 이르렀다. 계획상 파견대는 할하강 동쪽에서 남쪽으로 공격해 서쪽 강변의 일본군과 합류하기로 했다. 7월 3일 새벽 전차 87대가 소련 제149보병연대를 공격해 처음에는 수비대를 흩뜨렸지만, 소련 포병·전차와 맞닥뜨린 뒤 진격이 저지되었다. 일본군 제89식 중전차는 소련의 45밀리미터 포에 취약했고, 한 교전에서 소련 제9기계화여단이 이 전차 20대를 격파했다. 별도의 전차·보병·공병·포병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파견대는 장갑차량 절반 이상을 잃었다. 7월 9일 파견대가 해산되고 야스오카는 지휘관직에서 해임되었으며 전차연대는 철수했다. 이 패배는 전차를 다른 병과와 조율하지 않은 채 운용한 문제와 일본군 정보의 적 병력 과소평가가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