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제2핵무기설계국의 과학지도자
"문제를 피하는 최상의 방법은 상관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열이면 아홉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진짜 해결하고 싶으면 스스로 결정하고 보고하라.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련 핵무기 물리학의 핵심 설계자로서, 196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제2핵무기설계국(VNIITF, 첼랴빈스크-70)의 과학지도자를 지냈다. 1947년 충격파 수렴에 관한 논문으로 젤도비치의 눈에 띄어 원자폭탄 계획에 합류했고, 첫 소련 핵실험(RDS-1)에 기여했으며, 최초의 완전 독자 설계 핵전하(RDS-2)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 1955년 신설된 우랄 제2센터의 이론부문 책임자로 옮겨 1957년 소련군 최초의 실전배치 열핵전하 개발을 이끌었다. 과학지도자로서 25년간 이끈 VNIITF는 소련 핵탄두 대부분을 설계했고, 평화적 핵폭발 기술을 개척해 가스 유정 화재 진압과 지각 탐사에 응용했으며, 말년에는 무제한 누적 현상에 관한 논문으로 켈디시 금메달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8–1955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48–1955KB-11(아르자마스-16) 이론물리학자
- 1955–1960NII-1011 부과학지도자·이론부문장
- 1960–1984VNIITF(첼랴빈스크-70) 과학지도자
- 1968–1984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관련 역사 사건
평화적 핵폭발 연구와 그 응용
자바바힌은 1960년대부터 무기 개발과 별도로 핵폭발의 민간 응용을 연구하는 전환 프로그램을 VNIITF에서 추진했다. 그는 지표로 물질을 분출하는 폭발과 지하에 밀폐하는 위장 폭발용 특수 핵전하를 개발하고 그 매개변수 최적화를 직접 점검했다. 연구진은 이를 지각의 지진 탐사, 가스 유정의 폭발적 분출 차단, 석유 생산 증대, 지하 저장 공간 조성, 광석 분쇄 등에 적용했다. 또한 핵폭발 장치를 기초 연구에 활용해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극한 조건의 물질과 과정을 조사했다. 자바바힌의 과학지도 아래 이 프로그램은 핵전하의 설계와 폭발을 산업 및 과학 목적에 연결했지만, 군사 핵기술을 민간 용도로 전환하려는 계획이었다. 소련의 평화적 핵폭발 프로그램은 1965년부터 1988년까지 122회의 폭발을 수행했고, 총 128개의 핵폭발물이 사용되었다. 이 폭발들의 절반 이상은 지하 염층의 가스 응축물 저장 공동 조성과 지각·상부 맨틀의 심부 지진 탐사에 쓰였다. 이 국가 차원의 규모는 자바바힌 개인의 직접 책임 범위와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