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군의 명령과 항복 사이에 선 참모총장
1945년 9월 2일, 그는 대본영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우메즈 요시지로는 일본 제국 육군의 고위 지휘관으로, 중국과 만주 점령지에서 군사 통치와 일본의 대륙 정책을 수행했다. 그는 1944년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전쟁 지속을 주장했지만, 군부 내 쿠데타 시도에는 가담하지 않고 천황의 항복 명령을 관철했다. 1945년 9월 2일에는 일본 제국 대본영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서명했으며,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침략전쟁 수행 책임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4육군 소위, 보병 제1연대
- 1919–1921스위스 주재 무관
- 1934–1935지나 주둔군 사령관
- 1939–1944관동군 사령관·총사령관
- 1944–1945일본 육군참모총장
- 1945대본영 대표로 항복문서 서명
- 1948–1949극동국제군사재판 종신형, 복역 중 사망
관련 역사 사건
화북에 대한 일본의 압박과 관동군 지휘
1934년 3월 중국 주둔군 사령관이 된 우메즈는 일본군의 화북 지배 확대에 관여했다. 1935년 6월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북평분회 위원장 허잉친과 체결한 허·우메즈 협정은 허베이성에서 국민당 조직과 항일 활동을 금지하고, 중국군 부대의 철수와 허베이성 주석 위덕(于學忠)의 해임을 요구했다. 협정의 체결 경위와 중국 측의 동의 여부에는 이견이 있었다. 국제연맹 조사위원회는 1937년 일본이 이 협정을 근거로 난징 정부에 허베이로 군대를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화북에서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기록했다. 일본군은 마르코폴로 다리 사건 뒤 증원과 작전을 확대해 베이징·톈진을 점령하고 허베이에 친일 정권을 세웠다.
노몬한 전투 뒤인 1939년 9월 우메즈는 관동군 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관동군은 만주국을 점령·통치하는 일본의 핵심 군사기구로 기능했다. 한 군사사 백과사전은 부임 당시 도쿄의 통제를 회복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1942년 관동군이 총군으로 격상되면서 우메즈의 직함도 총사령관으로 바뀌었고, 1944년 7월 육군참모총장으로 옮길 때까지 이 직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