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원차이

袁文才

징강산의 산적 두목에서 홍군 연대장이 되었다가 당내 투쟁에 희생된 마오의 첫 동맹자

장시 징강산 기슭 마오핑의 객가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잃고 학업을 그만둔 뒤, 지주의 수탈에 맞선 농민들의 대표가 되어 산적 무리를 이끌었다. 1925년부터 공산당과 접촉해 그의 부대는 닝강 보안연대로 개편되었는데, 이는 공산당이 통제한 중국 최초의 무장 부대로 꼽힌다. 4·12 정변 뒤에도 공산당 편에 남아, 1927년 가을 징강산에 들어온 마오를 맞아 근거지 건설을 도왔다. 1928년 그의 부대는 왕쭤의 부대와 함께 정규 홍군 제32연대가 되었고, 그는 마오에게 허쯔전을 소개하기도 했다. 리리싼 노선의 모험주의에 반대하다가, 1930년 2월 투항 음모를 꾸몄다는 날조된 혐의로 왕쭤와 함께 현지 간부들에게 살해되었다. 1949년 뒤 혁명 열사로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원문재 · 위안쉬안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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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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