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一二事件 (四一二清黨·四一二反革命政變) · 1927.04.12–15

4·12 정변

April 12 Incident

1927년 4월 12일 장제스가 상하이에서 청방 무장대와 국민혁명군을 동원해 공산당이 이끄는 노동자 규찰대를 무장해제하고 공산당원과 노동운동가를 학살한 사건. 국민당은 「청당」, 중국공산당은 「반혁명 정변」이라 부른다. 국민당 지배 지역 전역의 공산당 숙청으로 번져 제1차 국공합작을 무너뜨렸고, 장제스는 4월 18일 난징에 별도의 국민정부를 세웠다.

상세

배경에는 1927년 3월 21~22일 저우언라이·자오스옌·왕서우화 등이 이끈 상하이 노동자 제3차 무장봉기가 있었다. 노동자 규찰대가 조계 밖 시가지를 장악하고 시민대표회의 정부를 세우자, 상하이의 은행가·상인과 열강은 공산당의 세력을 두려워했다. 상인들은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비밀리에 장제스 쪽에 댔고, 4월 2일 국민당 중앙감찰위원회는 공산당원 축출을 의결했다. 장제스는 청방의 두웨성·황진룽·장샤오린에게 공산당 노조에 맞설 조직을 만들게 했고, 4월 9일 상하이에 계엄을 선포했다.

4월 11일 밤 상하이 총공회 위원장 왕서우화가 두웨성의 저택에서 살해되었다. 12일 새벽 청방 무장대가 자베이·난스·푸둥의 노조 사무소를 습격했고 제26군이 규찰대를 무장해제했다. 총공회 본부와 상무인서관에서 저항이 있었으나 기관총과 야포에 무너져 300명 넘게 죽거나 다쳤다. 13일 항의 행진에 군대가 발포해 100명이 죽었다. 희생자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1천 명 넘게 체포되어 약 300명이 처형되고 5천 명 넘게 행방불명되었다는 기록과, 몇 주 사이 5천~1만 명이 죽었다는 추산이 함께 전한다.

4월 15일 광저우의 리지선이 같은 숙청을 시작했고, 청당은 국민당 지배 지역 전역으로 번졌다. 우한의 국민당 중앙위원 39명과 쑹칭링은 장제스를 쑨원의 배신자로 규탄했지만, 장제스는 4월 18일 난징 국민정부를 세웠다. 숙청은 난징 정부에 국민혁명군 다수와 상인층, 외국 기업의 지지를 안겼다. 7월 우한 정부마저 공산당과 갈라서면서 합작은 끝났고, 공산당은 도시에서 거의 사라져 무장 봉기와 농촌 근거지로 방향을 바꾸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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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