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유대인 추방 계획을 기록 부재로 반박한 반체제 생물학자
1970년 정신병원 석방 후: "어떤 정직하고 원칙 있는 학자도 그러한 근거로 정신병원 무기한 수용이라는 탄압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소련의 생물학자이자 반체제 역사가.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티미랴제프 농업아카데미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노화의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연구했다. 1962년 리센코의 유사과학을 폭로한 사미즈다트 원고 「생물학과 개인숭배」를 집필했고, 이는 1969년 《리센코의 흥망》으로 미국에서 출간되며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사하로프·솔제니친 등의 항의로 석방되었고, 1973년 런던 체류 중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말년의 저작 《스탈린과 유대인 문제》(2003)에서는 의사들의 음모 사건이 유대인 추방 계획으로 이어지려 했다는 통설을 기록 부재로 반박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5트빌리시(티플리스) 출생,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
- 1943붉은 군대 징집, 타만 반도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제대
- 1950티미랴제프 농업아카데미 졸업, 식물생리학 후보학위 취득
- 1962사미즈다트 「생물학과 개인숭배」로 티미랴제프 아카데미에서 해고
- 1963–1969오브닌스크 의학방사선연구소 분자방사선생물학 연구실장
- 1970강제 정신병원 수용, 국내외 학자·작가들의 항의로 3주 만에 석방
- 1973런던 국립의학연구소 초청 연구 중 소련 시민권 박탈, 영국 망명
- 1990–1992소련 시민권 회복,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방사선생물학 조사 참여
관련 역사 사건
키시팀 참사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 기록
1973년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한 뒤 영국에 정착한 메드베데프는 소련 과학과 핵 안전 문제를 계속 조사하고 저술했다. 앨런 로버츠와 함께 쓴 《원자력의 위험》(1977)은 1957년 마야크 플루토늄 생산 시설의 키시팀 참사를 언급했다. 그는 《소련 과학》(1978)에서 당시 서방의 의심에 맞서, 공개된 과학 문헌에 남은 흔적을 찾아 참사의 실재를 논증했다. 이어 《우랄의 핵 재난》(1979)에서 그 사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제시했으며, 《체르노빌의 유산》(1990)에서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키시팀과 함께 소련의 원자력 안전 문제라는 틀에서 다뤘다. 1990년 시민권이 회복되었고, 그의 저작은 소련에서도 출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