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마르코비치 보로딘
Михаил Маркович Бородин쑨원의 정치고문이자 제1차 국공합작의 설계자, 코민테른의 지구적 요원
미국인 KMT 지지자들이 쑨원에게 '보로딘이 가명이며 본명은 그루젠베르크라는 걸 아십니까' 하고 경고하자, 쑨원은 이렇게 답했다. '압니다. 라파예트요.'
쑨원의 정치고문이자 제1차 국공합작을 설계한 코민테른의 지구적 요원.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분트에, 1903년 볼셰비키에 가담했으며, 1905년 혁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서 망명 러시아인 학교를 운영했다. 1919년 멕시코 초대 소비에트 영사로 멕시코공산당 창립을 도왔고, 1923년부터 광저우에서 국민당을 레닌주의 전위정당으로 개조하고 황포군관학교를 설립했다. 그가 성사시킨 국공합작은 중국공산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발판이 되었으나, 1927년 장제스의 숙청으로 와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3RSDLP 가입, 볼셰비키
- 1905–1907리가에서 혁명 활동, 스톡홀름 제4차 당 대회 대의원
- 1907–1918미국 망명 — 시카고에서 이민자 학교 운영
- 1919초대 소비에트 멕시코 영사, 멕시코공산당 창립 지원
- 1919–1922코민테른 요원으로 유럽·아메리카 순회
- 1923–1927쑨원 정치고문 — 국민당 재편, 제1차 국공합작, 황포군관학교
- 1932–1949《모스크바 뉴스》 편집장, 소비에트 정보국 편집장
- 1949–1951반코스모폴리탄 캠페인으로 체포, 레포르토보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