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25일, 베네시는 공산당 민병대가 프라하 거리를 장악하고 내전이 임박한 가운데 비공산당 장관 12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1차 대전 중 마사리크·슈테파니크와 함께 민족평의회를 창설했다. 1918년부터 17년간 외무장관으로서 국제연맹과 소협상을 주도하며 프랑스·소련과의 동맹 체계를 구축했다. 뮌헨 협정으로 사임 후 런던 망명정부를 이끌었고, 전후 귀환해 대통령에 복귀했다. 1948년 2월 쿠데타에서 비공산당 장관들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고트발트의 공산당 정부를 승인함으로써 체코슬로바키아의 소비에트 블록 편입을 결정지었다.
1948년 2월 장관 사임을 이끌고 망명해 자유 체코슬로바키아 평의회를 이끈 국민사회당 의장
1948년 2월 공산당의 헌정 질서 변경을 막으려 비공산당 장관들과 사임했다. 쿠데타 뒤 감시를 피해 서방으로 탈출해 망명 정치를 이끌었다.
보헤미아 타보르의 소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교사가 되었고, 1937~1939년 프라하 시장을 지냈다. 독일 점령 뒤 체포되어 다하우와 부헨발트에 갇혔다가 1945년 미군에 의해 풀려났다. 전후 국민사회당 의장으로 다시 프라하 시장이 되었고, 1946년 선거에서 제2당을 이끌어 부총리가 되었다. 1947년 9월 마사리크·드르티나와 함께 폭발물 상자를 받았다. 1948년 2월 다른 비공산당 장관들과 함께 사임했고, 쿠데타 뒤 감시를 피해 망명해 1949~1974년 자유 체코슬로바키아 평의회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