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카에서 태어나 청년 튀르크 운동에 가담했고, 1차 세계대전 때 갈리폴리 방어로 이름을 얻었다. 패전 뒤 1919년 5월 삼순에 상륙해 점령에 맞선 국민운동을 조직했고, 1920년 앙카라에 대국민의회를 열었다. 볼셰비키 정부의 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그리스군을 물리쳤고, 로잔 조약으로 승리를 인정받았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그리스인에 대한 인종 청소가 학살·추방·주민 교환으로 마무리되었다.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일당 체제 아래 세속화와 튀르크화 정책을 폈다. 1938년 죽었다.
스미르나에서 태어난 오스만 장교로, 독립전쟁에서 대국민의회군 참모총장과 서부전선 사령관으로 1·2차 이뇌뉘 전투를 이겼다. 1922~1923년 로잔 회의의 튀르키예 수석 협상자로 커즌에 맞서며 세브르 조약을 로잔 조약으로 대체했다. 아타튀르크 아래 오래 총리를 지내며 세속화 개혁을 집행했고, 셰이크 사이드 반란 뒤 쿠르드인의 튀르크화를 밀어붙였으며 데르심 학살의 책임자로도 꼽힌다. 1938년 2대 대통령이 되어 「국가 지도자」 칭호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무장 중립을 지켰다. 1950년 선거 패배로 평화적으로 정권을 넘겼다. 1973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