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용어 사전사회혁명당

예카테리나 콘스탄티노브나 브레시코-브레시콥스카야

Екатерина Константиновна Брешко-Брешковская

44년간 감옥과 유형을 견딘 '러시아 혁명의 할머니', 사회혁명당 공동 창립자

「케넌 씨, 우리가 유형지에서 죽을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도, 손자들도 유형지에서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무언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1885년 시베리아에서 조지 케넌에게.

귀족 출신으로 1861년 농노 해방에 참여한 뒤 1874년 '민중 속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1878년 '193인 재판'에서 정치범 최초의 여성 카토르가형을 선고받아 22년간 감옥과 시베리아 유형을 견뎠으며, 조지 케넌의 르포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896년 석방 후 그리고리 게르슈니와 사회혁명당(SR)을 결성하고 전투조직 창설을 주도했으며, 1904년 미국 순회 강연으로 혁명 자금을 모금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상징적 원로로 귀환하여 예비의회 최고령 의장을 맡았으나, 볼셰비키 집권에 반대해 내전 중 백군을 지지했다. 1918년 망명하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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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1농노 해방에 참여, 가문 영지의 농민들을 위한 학교·도서관·협동조합 설립
  • 1873–1874키예프에서 급진적 지식인 공동체 결성; '민중 속으로' 운동 참여, 가짜 여권으로 농촌 선전 활동
  • 1874–1878체포되어 페트로그라드 구치소 수감; '193인 재판'에서 유죄 판결, 카라 형무소 5년 카토르가형 — 여성 정치범 최초의 강제노역 선고
  • 1878–1896카라 카토르가 복역 후 바르구진·셀렌긴스크 유형; 1881년 탈주 실패로 4년 추가 카토르가형; 22년간 수감·유형 생활, 조지 케넌과의 인터뷰로 국제적 명성
  • 1896–1901니콜라이 2세 대관식 사면으로 석방; 그리고리 게르슈니와 함께 민스크에서 나로드니키 운동 재건, SR 결성 준비
  • 1901–1903사회혁명당(SR) 공동 창립; 게르슈니와 함께 전국 비밀 조직 활동, 전투조직 창설 주도
  • 1903–1905체포 위협으로 제네바 망명; 1904년 암스테르담 제2인터내셔널 대회 참석 후 미국 순회 강연 — 약 1만 달러 모금, '바부시카' 별명 획득
  • 1905–1910러시아 귀환, 1905년 혁명 참여; 1908년 예브노 아제프의 배신으로 체포,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수감
  • 1910–1917시베리아 종신 유형 선고; 1913년 이르쿠츠크 탈주 시도 실패 후 야쿠츠크 독방 수감; 미국 여론 압력으로 이르쿠츠크 이감
  • 19172월 혁명 후 페트로그라드 귀환 — 케렌스키의 환영; 예비의회 최고령 의장; 볼셰비키 집권 반대, 체코슬로바크 군단 개입 호소
  • 1918–1934블라디보스토크·일본 경유 미국 망명; 백군 지원 요청 활동; 파리 거쳐 체코슬로바키아 정착, 카르파티아 노동당 조직; 프라하 인근에서 사망

마르크 안드레예비치 나탄손

Марк Андреевич Натансон

차이콥스키 서클에서 좌파 사회혁명당까지, 반세기 러시아 혁명운동의 위대한 결집자

'레닌과 나는 완전히 갈라섰다… 나는 더 이상 레닌을 믿지 않는다' — 1919년 망명 직전, 반세기 동지였던 볼셰비키와의 결별을 선언하다.

마르크 나탄손은 1870년대 차이콥스키 서클, '토지와 자유', '인민의 권리'의 공동 창립을 주도하고 사회혁명당 중앙위원을 지낸, 러시아 혁명운동의 조직적 골격을 반세기 동안 연결한 핵심 조직가이다. 탁월한 결집력으로 '혁명의 이반 칼리타'로 불렸고, 제1차 세계대전 중 치메르발트·킨탈 회의에서 국제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레닌과 협력했다. 1917년 좌파 사회혁명당과 혁명적 공산당 창립을 주도했으나, 일당 독재로 기운 볼셰비키에 환멸을 느끼고 '나는 더 이상 레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채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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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1차이콥스키 서클 공동 창립
  • 1876플레하노프와 카잔 광장 시위 조직; '토지와 자유' 결성 주도
  • 1893'인민의 권리'당 창립
  • 1906사회혁명당 중앙위원 선출
  • 1915–1916치메르발트·킨탈 회의 참가
  • 1917좌파 사회혁명당 지도자;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상임위원
  • 1918혁명적 공산당 공동 창립

베라 니콜라예브나 피그네르

Вера Николаевна Фигнер
인민의 의지 나로드니키 소련 러시아 1852–1942 ○ 자연사

나로드나야 볼랴 집행위원회 최후의 생존자, 20년 독방을 산 회고록 작가

「나는 자주 생각했다. 내 삶이 피고석 외에 다른 무엇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매번 스스로 대답했다. 아니오!」 — 1884년 '14인 재판'에서

카잔현 귀족 가문 출신, 취리히 대학 의학부 수학 중 나로드니키 서클 '프리치'에 합류했다. 1879년 나로드나야 볼랴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알렉산드르 2세 암살 계획을 기획했으며, 1881년 거사 후 유일하게 체포를 피한 집행위원이었다. 1883년 배신으로 체포돼 슐리셀부르크 요새 20년 독방 수감 후 회고록 『Запечатлённый труд』(1921–22)로 혁명운동의 핵심 증언을 남겼다. 볼셰비키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소련에 남아 대숙청기 스탈린에게 옛 동지들의 구명 탄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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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2–1875취리히·베른 대학 의학부 수학, '프리치' 서클 참여
  • 1876–1879사마라·사라토프현에서 '민중 속으로' 선전 활동, 펠처 근무
  • 1879–1883나로드나야 볼랴 집행위원; 알렉산드르 2세 암살 기획
  • 1883–1884체포, '14인 재판' 사형 선고 후 무기징역 감형
  • 1884–1904슐리셀부르크 요새 독방 20년 수감
  • 1906–1915해외 망명, 파리 정치범구제위원회 조직
  • 1917전러시아 농민대표소비에트 집행위원, 제헌의회 후보
  • 1921–1932『Запечатлённый труд』 출간, 구(舊)정치범 협회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