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어 1차 세계대전의 직접 계기가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위 계승자
그라츠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89년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하고 1896년 아버지가 죽자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조피 호테크와의 귀천상혼은 자녀의 계승권을 포기한 뒤에야 허락되었다. 군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1913년 전군 총감이 되었다. 성직주의와 반민주주의, 반헝가리주의를 신념으로 삼았으며, 제국 안 슬라브 민족들의 자치 확대를 주장하는 한편 세르비아에 대해서는 러시아와의 충돌을 경계해 신중론을 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아내와 함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되었고, 이 사건이 7월 위기와 전쟁으로 이어졌다.
모라비아의 독일계 농가에서 태어나 빈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1907년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다. 민족 문제에서 「개인적 자치」를 내세운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레닌과 스탈린의 비판을 받았다. 1918년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첫 총리가 되어 대연정을 이끌며 8시간 노동제 등을 도입했고, 생제르맹 조약으로 독일과의 합병 금지와 영토 상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938년 합병을 지지했다. 1945년 4월 소련군의 지시로 임시정부를 세웠고 그해 대통령이 되었다. 1950년 빈에서 죽었다.
1989년 6월 27일, 모크와 호른 줄러가 쇼프론 인근 철조망을 절단하며 국경 개방을 세계에 알렸다.
알로이스 모크는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정치가로, 유럽 통합을 오스트리아 외교의 중심 과제로 삼았다. 외무장관으로서 헝가리의 국경 개방과 오스트리아의 유럽공동체 가입을 추진하며 냉전 종식기의 중부 유럽 재편에 관여했다. 1989년 6월 27일 호른 줄러와 국경 철조망을 상징적으로 절단한 장면은 동독 주민들의 탈출과 동구권 붕괴로 이어진 국경 개방의 국제적 상징이 되었다.